복음 묵상

내가 그를 부르고, 그가 나를 부를때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2. 2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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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산을 오르는 두 사람

교회의 반석

 오늘의 복음 말씀 구절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교회의 반석'이라는 역할과 '천국의 열쇠'를 전해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석 제자이자, 초대 교황인 베드로에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들을 전해주었는지를 복음 전문을 읽으며 천천히 살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오늘의 복음 초반에는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제자들에게 물어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오랜 기간 동안 예언되어온 구원자 같은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이어, 자신은 제자들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람들이 부르는 예수님을 떠올리며 대답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원자인 그리스도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합니다. 

신을 부르는 다양한 이름

 현대에는 신을 지칭하는 다양한 말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종교라고 하더라도, 그 종교를 믿는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신의 존재가 다릅니다. 어떤 이는 "심판하는 존재"로 어떤 이는 "전지전능한 존재"로, 또 어떤 이는 "냉철한 존재"로 신을 부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정의

 남들이 어떻게 부르고 있던,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가 신을 정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느님은 그것마저 허용하신 듯합니다.

먼저 골라라

 예수님은 신기하게도 우리에게 먼저 자신을 정의할 기회를 줍니다. 그러고 나서, 당신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를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어떻게 부르는지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달리 드러내시기도 합니다. 당시 예수님은 누군가에겐 시골 목수의 아들에 불과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따르던 수천의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한 각기 다른 정의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베드로는 유일하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임을 고백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살과 피가 아닌 성령이 그것을 알려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잣대가 아닌 마음의 눈으로

 베드로는 당시 세상의 잣대로 예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논리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다면, 그 어떠한 것도 말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원하는 어떠한 존재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예수님을 알고 싶다는 소망이 있을 때, 성령은 그 눈을 뜨게 해 줍니다. 생각해보면 어떠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존재는 "신"뿐입니다. 성령은 그러한 "신의 시각"을 우리에게 빌려줍니다.

진짜 그 대상이 궁금할 때

 만약 당신이 소개팅에 나가게 된다면, 어떠한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겠습니까? 그 대상이 자신의 이상형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매력이라고 느껴지는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바라볼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당신은 그 사람을 더 만나지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상대방을 자신이 원하는 틀에 넣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진정으로 궁금해질 때, 비로소 그 대상을 알아가는 첫 발걸음이 됩니다.

 

내가 그를 부르면, 그도 나를 부르고

 예수님은 자신을 진정으로 보고자 하여, 보게 된 사람에게 그 사람의 진짜 이름을 불러줍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을 진정으로 느낀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그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러한 과정은 '임무를 부여받는 것'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진짜 당신의 모습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우리 자신보다 더 나를 더 잘 아는 존재는 바로 창조주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구세주)'임을 고백하는 것은, 나를 만들고 키워가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목적에 맞게

 만들어놓은 목적에 맡게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대상이 최적의 길을 걷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은 달릴 때 행복하고, 물고기는 헤엄칠 때 행복합니다. 사람은 모두 각기 다르게, 그리고 아주 세심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존재를 제대로 바라볼 때, 우리 자신의 모습도 제대로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불러주는 우리의 이름과 역할에는, 우리가 늘 찾아 헤매던 자신이 태어난 이유와 살아야 할 이유가 담겨 있습니다.

 

천국의 열쇠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며, 예수님은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땅에서 매거나 풀면, 하늘에서도 매이거나 풀릴 것이다." 이 내용이 천주교 사제들의 고해성사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천국의 열쇠에 등장하는 땅과 하늘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땅을 우리의 "내면", 하늘을 "현실"이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나의 마음이 그와 같다면

 자신의 마음속에서 희망하는 것이, 하느님의 희망과 일치한다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신의 굉장한 권력과 능력을 지닌 천국의 열쇠라기보다, 하느님의 마음을 조금은 더 알게 되고, 또 그를 믿는 마음이 조금은 더 두터워지는 이들에게 부여되는 믿음의 열쇠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이자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믿음의 열쇠가 주어지는 듯합니다. 어쩌면 이 믿음의 열쇠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신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신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게 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