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하지 마시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에서는 "맹세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끔 기도와 맹세를 혼동할 때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좋은 기도는 더 큰 맹세로 가능해진다고 착각할 때가 많아서인 것 같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더 많은 것을 걸고 약속할 수 있어야, 상대에 대한 신뢰와 소중함이 더욱 잘 전달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맹세는 옳은 방향이 아닌가 봅니다. 복음 전문을 읽어보며,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시는지 귀 기울여 봅니다.
복음 전문
남을 탓하지 마시오
복음의 첫 부분에서는 형제를 서로 원망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필자는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남 탓을 자주 하곤 합니다. 남 탓을 하게 되면 당장 마음이 편할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괴로워집니다. 남 탓으로 시작된 마음은 짜증과 원망으로 점점 가득 차서 혼란스러워집니다. 이렇게 시작된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원인을 찾기보다 잘못을 찾는 방향으로 치우쳐집니다.
심판받지 않는다
형제를 서로 원망하지 않아야 심판받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서로 원망하는 행위가 나쁜 행위여서 심판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 행위이기에 심판받기도 합니다. 자신이 직면한 어려움의 원인은 자신 안에 있습니다. 그 어떤 두려움과 혼란, 분노와 시기, 불안함과 초조함은 상대가 나에게 제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몫
남 탓을 하지 말라는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 몫이 우리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괴로워하는 그 문제는 사실 다른 사람들의 몫이 아닌 우리의 몫일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으로 자신이 혼란스러워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스스로 확신이 없기에 흔들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무리 오지랖이 넓고 배려심과 공감능력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과 아무 연관이 없는 일에는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어떠한 문제에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자신과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연결고리가 맞닿아 있는 부분을 상대가 아닌 내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제 탓이오 (내가 나를 괴롭게 하고 있군요)
그래서 미사에서 제 탓이오를 세 번 외치는 예식은 자기 학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성찰과 원인 분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오늘 복음에서는 인내라고 표현하는 듯합니다. 남을 탓하는 것은 쉽고 빠른 방법이지만, 그 길을 선택하지 않고 잠시 그 상황과 자신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때 스스로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자신을 탓한다는 것은 잘잘못을 따지는 차원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힘들어하고 있는 원인을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찰은 자기학대로 이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맹세하지 마시오
자신의 성찰을 통해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채운 족쇄입니다. 마치 타인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자신의 손으로 타인의 손을 잡은 후, 스스로 찌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맹세하지 말란 말은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맹세가 족쇄가 되는 이유
맹세가 스스로에게 족쇄가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맹세를 위해 우리가 내미는 그 무언가는, 사실 온전한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으로 부모님과 내기를 하는 셈이지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조건으로 내거는 순간,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믿게 되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맹세를 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가 되는 것이지요.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나약함 때문입니다. 맹세를 한다는 것은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을 몰아붙이게 되면,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할 것과 "아니오"라고 할 것을 구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남이 아닌 스스로를 바라볼 때, 무엇을 "예"라고 대답하고, 무엇이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에 반하는 대답으로 맹세하는 것은 신뢰와 믿음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뒤트는 무의미한 행위일 뿐입니다. 그러한 맹세는 도대체 누굴 위한 맹세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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