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선포하여라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입니다. 우리가 선포해야 할 복음, 즉 '기쁜 소식'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온 세상과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궁금해집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복음 선포에 관한 묵상을 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선포에 대한 편견
'복음 선포'라는 표현에 꽤나 반감이 있었던 때가 떠오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며 강권하고, 또 자신만의 가치관과 삐뚤어진 종교관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들이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뒤틀린 사고방식을 심어주며, 타인을 통제하려는 사례가 실제로 비일비재하다 보니, 더욱 그러한 반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포하려는 복음이 정말 우리에게 기쁜 소식인가요? 그리고 내가 전하려 하는 그 소식이 상대에게도 기쁜 소식이 맞을까요? 종말과 죄의식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상대를 통제하려는 협박이 아닌, 억눌려있는 이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는 소식이 바로 복음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시다
복음은 예수님이 처음 나타나셨던 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한때, 마귀로 인해 고통받던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통해 그 고통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재회함으로 또 한 번의 기쁨과 해방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는 부활한 예수님을 보고 느낀, 그 기쁨을 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더 이상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전합니다. 예수님이 유령이 되어 나타났으니 우리는 앞으로 조심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전해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그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슬픔에 잠겨있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완고한 마음
예수님은 식탁에 앉아있는 열한 제자에게도 나타납니다. 그러고는 자신을 미리 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음을 꾸짖으십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나서야 슬픔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오게 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복음 선포의 임무를 주십니다. 온 세상과 모든 피조물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임무를 말입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 즉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변화는 쉽지 않은 선택처럼 보입니다. 설령 그것이 슬픔에서 기쁨으로 나아가는 긍정적인 변화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이러한 완고함으로 인해, 우리가 기쁨을 맞이할 수 있는 순간이 늦춰질 때도 있습니다.
기쁨을 전하는 사람
누군가가 기쁨을 전하는 상황을 떠올려봅니다.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 "기쁨"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자신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면, 누가 그 기쁨을 기쁨으로 받아들일까요. 복음은 단순히 무작정 누군가를 방문하여 판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럴듯한 말솜씨와 포장지로 속여서 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진짜 음식을 맛있게 먹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먹는 음식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갑니다. 하지만 불편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내밀며 자신이 먹던 음식을 권한다면, 그 누구도 그 권유를 쉽사리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한 복음 속 여자는, 하느님을 통해 해방과 기쁨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을 온 세상과 모든 피조물에게 전한다는 것은 그 복음을 온전히 내가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복음을 선포하고자 한다면, 그 내용물이 무언인지를 우리 스스로가 직접 경험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마태오복음 9장 35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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