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약한 자의 의심
오늘 복음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다가, 의심을 품어서 물에 빠지게 된 베드로를 믿음이 약한 사람이라고 칭하였습니다. 상반되는 것 같은 믿음과 의심에 대해,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군중을 보내시고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왔던 군중을 보내시고, 혼자 기도를 하기 위해 산에 오르십니다. 이러한 장면은 마치, 군중에게 나누어주었던 힘들을 충전하기 위해서, 혼자만의 회복시간을 갖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혼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등장은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습니다.
물 위를 걷다
예수님은 호수 위를 걸으시며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당연히 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움과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혼란을 겪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을 듣고, 당신이 진짜 예수님이시라면, 자신에게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해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베드로는 잠시 물 위를 걷게 되었지만, 위협적인 주변 환경에 정신을 뺏기고, 또다시 두려움이라는 물속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베드로에게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시지요.
물 위를 걷는 기적은 상당히 놀라운 사건입니다. 혼자 기도를 하고 산에 다녀온 예수님이, 단순히 제자들 앞에서 묘기를 부리기 위하여,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보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 위를 걷고, 또 물 위를 걷게 한 예수님의 기적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고자 행해지고, 또 기록되었을까요?
완전한 자유를 위해
우선 예수님의 입장을 상상해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들과 굶주린 군중들을 치유해주고 배 불려주면서 많은 기력이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기적을 행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셨을 테지요. 예수님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우리를 구원해주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에게 전해질 생명은, 잠시 동안만 머물 생명이 아닌, 영원한 생명, 즉 죽음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였을 것입니다. 그러하였기에 예수님은 항상,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전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으리라 추측해봅니다.
예수님이 치유해준 수많은 병자들의 당장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또 다른 형태의 아픔이 찾아오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굶주림에서 벗어나 배부름을 느꼈던 군중에게도 역시, 또 다른 배고픔이 찾아오게 될 테지요.
예수님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신을 따르던 그들에게 가여운 마음이 들어서,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문제로부터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맡기다
예수님은 산 위에서 혼자 기도를 드리며, 이러한 근심과 걱정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오셨을 것입니다. 또한 그 방법을 아시는 하느님의 이끄심과 지혜도 함께 청하셨을 테지요. 그렇게 온전히,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나서야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난 후, 완전한 믿음으로 마음을 다진 예수님에게는, 더 이상 두려움과 불안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두려움과 불안함이라는 물속에 빠질 일도 없었을 테지요. 예수님은 당당히, 그리고 안전히, 물 위를 걸으시며 제자들에게 다가오십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법칙을 거스르며, 기적을 행하는 예수님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한 사건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을 예수님의 마음 상태를 후대에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느님의 비유가 현실로 실현되는 기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또다시 빠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걱정과 근심에 빠지고는 합니다. 마치 물 위를 걸으려고 하는 것처럼, 한발 한발 디딜 때마다 새로운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히고는 하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아주 잠시나마 물 위를 걸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하느님을 믿으며, 모든 근심과 걱정을 그분께 맡기고 잠시나마 자유를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환경의 변화를 마주하고 나면, 또다시 두려움과 걱정이라는 물속에 빠져버리고 말지요.
병자가 다시 아픔을 겪게 되는 것처럼, 굶주렸던 이가 다시 배고픔을 겪게 되는 것처럼, 두려움과 걱정 속에 빠졌던 이는 또다시 그 안에 빠지게 됩니다. 이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이 반복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당장의 해결이 아닌 완전한 믿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아이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나약하고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어린아이 곁에 자신이 믿고 있는 부모가 버티고 있다면, 그 아이의 마음에는 두려움도 걱정도 남아있지 않게 되지요. 어린아이가 갑자기 자라나서 어른이 된 것은 아니지만, 부모를 향한 믿음으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당장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을 멈추고, 완전한 하느님을 완전히 믿으며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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