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우리의 길과 행실을 고치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7. 3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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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
낭떠러지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오늘 독서 말씀 속 화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모두에게는 살면서 굳어진 각자의 길과 행실이 있습니다. 옳지 않은 방향으로 향해있는 그 길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독서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독서 전문

도성을 거슬러 예언하다


 오늘 독서에는 예언자 예레미아가 등장합니다. 그는 한 도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예언을 하지요. 이러한 예언을 반길리 없는 도성 사람들은, 예레미아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마음을 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큼 누구에게나 불쾌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떠한 사람이 낭떠러지를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그 사실을 전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당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으니, 그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가시오!"라며 다급하게 외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 다급한 외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 사람의 몫일 테지요.

 

나에게 의견을 주었을 때


 누군가가 나의 길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주었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스스로가 자신이 걷는 길에 떳떳함을 느끼며 올바르게 걸어가고 있을 때는, 상대방의 의견이 우리의 마음 상태에 큰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스로가 그 길에서 왠지 모를 불안함과 불편함, 그리고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때에는, 들려오는 타인의 의견이 우리의 심경을 꽤나 거슬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모순적이지만 남들의 의견이 너무나도 듣기 싫을 때가, 타인의 객관적인 시선을 가장 참고해야 할 시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의견을 이야기한 대상이 죽이고 싶을 만큼 밉고 거슬린다면, 우리가 걸어온 길과 행실을, 당장 돌아보아야 하는 때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남들이 이야기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자신이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올바른 행실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그것을 외면하며 덮어두고 살아왔기에, 그 모습을 들추어내는 듯한 상황에 대해 격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즉 진실을 전하였다고 해서 잘못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누군가가, 진실이 아닌 자신의 의견을 우리에게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형을 받을만한 죄목은 되지 못하지요. 어쩌면 상대를 향한 우리의 분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길을 바꾸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어려워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안 되는데'라고 말하면서도, 또다시 자신의 행실을 반복하지요.

 

예언자를 묵살시키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된 길과 행실을 알아차릴 때마다,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예언자의 목소리를 묵살해왔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 속 예언자의 목소리를 자꾸만 외면하다 보면, 우리의 외부에서 예언자의 목소리를 듣게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를 살리고자 하는 것이 하느님의 마음일 테지요.

 

 불편함과 불쾌감이 계속되는 상황들이 펼쳐진다면, 지금 나의 길과 행실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를 알려주는, 내면의 예언자에게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말씀 우리의 내면에 퍼져나가며, 진실을 마주할 수 있도록 늘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진짜 예언자의 말


 예수님은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의 모든 의견을, 진짜 예언자의 의견으로 둔갑시키며 과도하게 휘둘릴 때도 있지요. 하느님의 말씀을 이야기하는 진짜 예언자의 말은, 우리의 내면과 진실을 바라보게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진짜 예언자의 말은, 단순히 그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결과가 아닌, 그 예언자의 말을 계기로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변화를 이루어내는 형태로 다가옵니다.

 

'착함'과 '선함'


 진짜 예언자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착함'과 '선함'을 반드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착한 사람'은 타인의 입맛에 맞추어 삶을 살아가며, 관계에 있어서 마찰을 회피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선한 사람'은, 타인이 아닌, 내면에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으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의미하지요.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자신과의 교류와 성찰이 병행되는지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착함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타인의 반응과 시선에만 몰입되어, 자신의 내면 속 예언자와 대화를 잘 나누지 못합니다. 또한 자신의 길과 행실의 초점이 타인과의 관계에 있기에, 정확한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선한 사람은 자신이 직면한 모든 상황에서 하느님의 말씀, 즉 진실에 초점을 둡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면 속 예언자는 어떠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에 귀를 기울입니다. 선한 사람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매 순간 자신의 길과 행실을 하느님의 방향으로 수정하며 나아가지요.

 

 우리는 내면의 예언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까지, 도성 사람들과의 관계만 우선시하는, 착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를 사형에서 구해주며, 그의 목소리 안에 담긴 하느님의 말씀을 찾을 수 있었던 사판의 아들처럼, 자신의 내면에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선한 사람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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