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윗자리와 끝자리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0. 2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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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자리

윗자리에 앉지 마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잔치에 초대받았을 때 윗자리에 앉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지양하라는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일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윗자리를 고르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초대되었고, 그곳에서 윗자리를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윗자리를 고르기보다 스스로를 낮추어 자리를 고르는 방법을 권하시지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라는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이야기 속 '윗자리를 고르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우리와는 다른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윗자리를 탐하며 거들먹거리는 그러한 부류들과 자신을 구분해보지만, 실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머지않아 느끼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자리, 그리고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매일을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더 행복해지고, 더 대우받으며, 더 강해지는 것이 많은 이들의 현실 속 목표이자 목적일 테니 말이지요.

 

끌어올려지는 편이


 하지만 세상 속 사람들의 흔한 선택과 바람과는 달리, 예수님은 윗자리를 자처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가장 끝자리에 앉았다가 자신의 진짜 위치에 맞는 자리로 끌어올려지는 편이 더 자랑스럽고 행복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진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합당한 자리가 있으며, 합당함의 기준을 자신만의 판단에 근거하여 어떠한 위치를 탐하는 순간, 부끄러움과 박탈감은 온전히 그 사람의 몫이 된다는 사실이지요.

 

 예수님은 가식적이고도 인위적인 겸손을 강조하고자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편협적인 시야로는 자신의 진정한 위치를 알지 못하기에, 우리의 판단과 바람만으로는 진실된 스스로의 자리를 찾기 어려움을 표현하신 것이지요. 또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실된 위치가 드러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가 있다면, 행복과 보람은 우리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합당하지 않사오나


  우리는 영성체를 모실 때, "합당하지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다."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영광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정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주시는 "치유의 과정"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이 과정들의 시작에는 명확한 인지와 수용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아픈 이가 나을 수 있게 되려면, 스스로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어쩌면 참된 겸손은 진정한 자신의 상태와 위치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아픈 상태이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것, 자신이 아직 부족한 상태이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겸손일지도 모르지요. 

 

하느님의 손길로


  우리의 치유가 그러하듯, 우리의 영광 역시 하느님의 손길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생명"이라 일컬을 수 있는 우리의 모든 기쁨과 행복들 역시, 우리가 지정해놓은 어떠한 자리에 있다기보다 하느님의 손길과 이끄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자신을 깎아내리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향이 아닌, 주님이 우리를 끌어올려주실 때를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는 겸손을 청해봅니다. 지금껏 우리가 겪어왔던 영광과 행복, 그리고 기쁨과 평화가 그러했듯이,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선한" 모든 것들 역시, 하느님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며, 삶의 끝자리에 앉아 묵묵히 걸어 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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