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0. 31.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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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잔치를 베풀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이 구절은 "베풂"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진정한 베풂은 무엇이며, 또 올바른 방향의 베풂은 무엇일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예수님은 자신을 초대한 바리사이의 지도자에게 이러한 말씀을 건네십니다. "네가 점심이 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이러한 당부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말씀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무언가를 베풀 때에는 그것을 보답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지 말고, 그것을 되갚을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베풀어야 행복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지요.

 

 하지만 보통, 무언가를 베풀거나 호의를 표시할 때, 우리는 다시 되돌아올 무언가를 기대합니다. 주고받는 거래의 관계에 익숙한 우리는, 선의와 호의 역시 서로가 주고받는 과정을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며, 그들과의 관계와 상태를 고려하며 호의를 베풀 때가 많습니다.

 

베푼다는 것


 하지만 "베푼다"라는 단어를 곱씹어본다면, 주고받은 행위가 아닌 일방적인 "줌"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준 것을 상대에게 바라거나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을 우리는 "베풀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바라면서 한 행동은 "거래의 행위", 즉 "빌려줌"과 같은 "부채"의 개념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지요.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베풀었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빚쟁이"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상대에게 서운하거나 불쾌한 감정이 들 때를 되돌아보면,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마인데?"라는 보상심리가 짙게 깔려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돌이켜보았을 때, 우리의 행복을 위해 선택했다고 생각한 "베풂"은, 행복이 아닌 불행이 되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베풂의 기쁨


 예수님은 무언가가 부족하며, 그것을 우리에게 다시 되돌려줄 수 없는 이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을 때, 우리가 비로소 행복해질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라는 말씀은 진정한 베풂의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를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다른 이들과 나누면서 한 가지 사실을 뚜렷하게 인지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이 나누고 있는 무언가를 한때 "지니고 있었다"라는 사실이지요.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친절을 지니고 있습니다. 먹을 것을 베푸는 사람은 먹을 것을 지니고 있으며, 어떠한 힘과 능력을 베푸는 사람은 그에 해당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지의 과정에서 우리는 풍요와 감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것들을 허용해주셨다는 마음으로 이어지기에, 하느님과 그분의 은총을 느낄 수 있는 상태, 즉 진정한 기쁨과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이지요.

 

대가를 바라다


 반면에 대가를 바라며 선택한 베풂은 우리에게 "상실"과 "결핍"을 더욱 부각합니다. 원래 내 것이었던 것이 상대에게 흘러갔다는 사실에 집중하기에,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결핍"에 더 집중합니다. 따라서 나의 것을 가져간 상대가 자신을 "채워줄" 상황만을 기대하며 전전긍긍하게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보답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다."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음을 고려해본다면, 분명 모든 것에 대한 제 값이 "언젠가는" 하느님에 의해 다 치러질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보답을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바라는 마음과 기대가 생겼을 때, 실제 보답이 주어질 때까지의 기간이 행복이 아닌, 초조함과 불안함에 가까워집니다. 

 

차라리 주는 것


 우리는 흔히 친구 간에 돈거래를 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빌려준 금액이 적더라도, 상대방이 자신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는 사실이 각인되면, 그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 그 빚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친구가 금전적인 도움을 원한다면, 자신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차라리 돈을 줘버리는 게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에게 받아야 할 돈이 있다는 사실이, 그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 우리의 행복과 평화를 망가뜨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행복을 원한다면


 서로의 관계가 좋아지기를 바라며 선택한 행동들이, 오히려 관계에서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자주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베풂이 불행이 아닌 행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시며, 우리의 노력이 좋은 방향으로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누군가를 향한 호의나 베풂이 앞서고 있다면, 우리가 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지, 혹은 되받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베풂의 끝에 행복 또는 불행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큰 열쇠가 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무조건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일 "베풂"을 통한 풍요와 행복을 원한다면, 어떠한 베풂을 실천해야 할지를 제시해주신 것일 뿐이지요. 베풂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선택에 해당하는 보답은 상대방의 선택과 하느님의 선택일 것이지요. 우리의 몫과 상대의 몫을 구분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선택을 이어나간다면, 행복을 향한 여정에서 불행이라는 잘못된 길에 들어서는 불상사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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