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자격지심을 밟고 일어서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0. 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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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다
산에 오르다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이 구절을 통해,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떠올려봅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우리를 찾아 구원해주시는 예수님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자캐오의 작은 키


 오늘 복음에서는 자캐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자캐오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소 흥미로운 사실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가 세관장이며 부자였지만 작은 키로 인해 군중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지요. 복음에서 언급된 자캐오의 "작은 키"는 어쩌면 우리가 콤플렉스라고 생각하며 불편함을 느끼는 것들을 대표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콤플렉스, 또는 자격지심은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스스로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자격지심은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며, 진실을 가리어 온전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격지심은, 놀랍게도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의 훌륭한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발판이 되다


 자캐오는 자신의 작은 키로 인해, 남들이 다 보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자캐오의 결핍은 예수님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고, 그 갈망은 나무에 오르는 선택으로 이어져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지요.

 

 때로는 우리의 모자란 부분이 갈망과 간절함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바라보려 했던 자캐오의 간절함은 예수님의 마음까지 전달되었으며, 예수님은 직접 자캐오의 집에 방문하는 상황으로도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죄책감과 죄의식


 자캐오에게는 '작은 키'라고 표현된 자격지심과 더불어,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죄책감"과 "죄의식"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가진 것은 많았지만, 자신이 살아온 삶의 길에서 떳떳하지 못하거나 부끄럽게 여기는 일들이 있었기에, 그의 마음은 풍요롭지 못했지요. 오히려 그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움츠러들었으며, 움츠러든 그의 마음은 점점 좁아졌기에, 지나가는 예수님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캐오의 집에 방문하겠다고 결정하셨을 때, 군중은 이러한 선택에 대한 불만을 표현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군중의 심리 안에도, 자격지심과 죄책감으로 인한 마음의 옹졸함이 섞여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옹졸함은 상대의 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며 그 사람을 심판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상대를 심판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심판하는 "죄책감"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지요.

 

모든 것을 극복하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자신의 자격지심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보게 된 자캐오는, 예수님의 방문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의 방문은 자캐오의 치유와 회개로 이어졌으며,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작은 키와 죄책감들은 더 이상 자캐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요. 자캐오는 그렇게 자신의 집에 방문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머물게 되신 예수님을 언제나 느끼고 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착하신 목자 우리 주님


  예수님은 자신의 목적이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키가 크고 강인한 사람들을 드러내 보이고 내세우는 것보다, 마음이 점점 작아져서 갈 곳을 잃게 된 이들을 찾아, 다시 하느님 곁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에 더 집중하겠다는 말씀으로도 다가오지요.

 

 우리는 예수님을 "착한 목자"라고도 부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자녀들을 잃지 않고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이끌어주는 그러한 목자를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삶에서 들려오는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예수님을 찾아봅니다.

 

 만약 우리의 자격지심과 죄책감으로 인해, 혹은 타인의 판단과 시선들로 인해 예수님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면, 그러한 모든 장애물들을 재료와 발판으로 삼아, 예수님이 보이도록 시야를 넓혀봅니다. 지나가던 예수님도 간절한 우리의 마음을 보실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만남이 우리의 치유와 구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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