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은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의 이러한 고백은,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베드로가 이야기한 주님에 대한 사랑이 무엇일지, 그리고 그 대답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이나 모른척하며 외면했던, 제자 베드로에게, 세 번의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베드로는, 자신의 사랑을 주님께서 알고 계시다고 대답합니다. 이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러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사랑을 말로 증명할 수 있을까?
반복되는 사랑을 확인하는 질문은 사실 우리를 당황하게 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연인 혹은 부부 사이에서도, "나를 사랑해?"와 같은 질문이 반복되다 보면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반복되는 사랑 확인 질문은 '나의 사랑이 못 미더운가?', '사랑을 빌미로 무엇을 시키려 하는가?'와 같은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단순히 사랑의 확인을 위해서, 그리고 베드로를 시험하기 위해서, 세 번이나 반복된 질문을 던지셨던 것일까요?.
세 번의 질문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은, 과거 베드로의 세 번의 배반을 떠오르게 합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따라서 죽겠다는 각오와, 예수님과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고백을 아주 자신 있게 말하던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베드로는 자신의 말과 일치하지 않은 행동으로, 예수님을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베드로는 끝없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테지요.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은 아마도, 자신이 예수님을 외면하고 배반하였다는 세 번의 죄책감을 씻어주기 위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를 용서해주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요. 나의 잘못을 상대가 용서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타박하고 고문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잘못으로 괴로워하는 누군가가, 우리를 용서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용서하였다고 하는, 잘못된 화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상대가 건넨 용서의 손길이 진정한 화해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용서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유명한 일화가 떠오릅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는 당시 법을 들먹이며, 예수님 앞에 간음한 여자를 끌고 옵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은, 땅에 무언가를 적으시더니, 죄가 없는 사람부터 돌을 던지라고 이야기하시지요. 예수님은 그렇게 군중들을 돌려보내고, 남아있는 간음한 여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죄 자체보다, 죄의 뉘우침으로 피어날 사랑을 보고 계셨기 때문이지요. 만약 그 자리에서 간음한 여자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며 삶을 마감했다면, 사랑을 향한 새로운 출발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랑의 씨앗을 심다
예수님은 이처럼 죄로 인해 생긴 우리 마음속 균열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십니다. 베드로에게 세 번의 질문을 던지시며, 너의 마음속 균열에서는 더 이상 죄책감이라는 고름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새살이 돋아날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자라나는 사랑으로 자신의 양을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양들을 공포와 억압, 그리고 학대로 돌보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랑으로 양들을 돌본 것처럼, 베드로도 그러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사랑으로 양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또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능하기에, 베드로에게 그러한 과정들을 허락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의 질문으로 베드로의 시선을 죄가 아닌 사랑으로 돌려주십니다. 베드로는 그 질문에 답하며, 자신이 얽매어 있던 자신의 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여 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시선이 조금씩 옮겨갑니다.
베드로의 대답이었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는 아마도 이러한 대답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제가 비록 제 말을 지키지 못하고,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지만, 죽음의 위협 앞에서 예수님을 외면하고 부인하였지만, 이렇게 멋없고 부족하고 못난 저이지만, 그래도 당신만큼은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베드로의 죽음
예수님은 베드로의 죽음을 예견하십니다. 심지어 속박되어 자유가 빼앗기는 듯한 미래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지요. 자칫하면 이 이야기는 강요된 희생과 저주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에게 죽음이 어떠한 의미일지를 생각해보면,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며, 함께 죽겠다는 고백을 했던 사람입니다. 당시 그 말의 무게를 알지 못했을지라도, 마음 한편에는 그 말이 씨앗이 되어, 늘 베드로의 마음속에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외면하며 구차하게 연명한 자신을 수백 번 나무랐을 것이고, 그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하늘조차 바라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커져버린 죄책감이라는 나무덩굴은, 결국 예수님의 사랑을 가리며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두어 버리고 말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 나무덩굴을 잘라내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 스스로가 가장 큰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었지만, 줄 수 없었던 무언가를, 이제는 줄 수 있음을 깨달았을 때, 베드로는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가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루카복음 22장 3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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