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6. 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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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속 빛줄기
성당 속 빛줄기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거룩해진다는 것과 진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리로 인하여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는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거룩하신 아버지


 예수님은 하늘을 보며,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청합니다. 하느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거룩함'은 신만이 지닐 수 있는 특별함과 고귀함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한 거룩함이 인간인 우리에게 해당되는 표현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하느님께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하나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성부이신 하느님과 성자이신 예수님, 그리고 성령은 모두 거룩한 상태의 하느님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거룩해짐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처럼 거룩해질 수 있으며, 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일까요?

 

거룩함, 자연스러움


 성자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에서도 거룩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거룩함은 단순히 외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머무는지에 달려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늘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인 하느님의 말씀, 즉 하느님의 뜻을 삶과 죽음을 통해서 늘 전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계명과, 빛을 따르는 것이, 본래의 자연스러운 거룩함을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멋대로 살아온 삶에 익숙해진 우리는, 자연스러운 거룩함에 쉽게 적응하지 못합니다. 함께 살아가면서 기본적인 인간됨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기 어렵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단순히 착해 보이고, 고귀해 보이며 거룩함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이 선을 향하는 거룩함이 우리에게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익숙해진 상태여야, 거룩한 존재들과의 동행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거룩함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하여 주십니다. 몸소 자연스러운 거룩함을 실천하며, 우리의 삶에서 함께 지내는 선택을 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가끔 흔들릴지라도,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간다면, 우리도 하느님이 지니고 있는 자연스러운 거룩함에 익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소리 내어 기도하다


 예수님은 자신의 청을 제자들의 곁에서 소리 내어 기도하십니다. 하느님은 소리 내어 기도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실 테지만, 아마도 예수님은 자신의 기도를 제자들도 함께 들을 수 있도록, 그리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기도를 통해, 거룩함의 여정, 즉 하느님을 따르는 여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세상으로 보내다


 예수님은 거룩함과는 대비되는 세상이라는 곳에 우리를 보낸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죄악이 가득한 더러운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조상은 하느님의 규율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악과는 사람이 선과 악을 볼 수 있는 열매처럼 묘사되었지만, 사실은 인간이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열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선과 악을 온전히 분별할 수 있는 존재는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처럼 된다는 뱀의 유혹에 속아 마치 자신이 하느님이 된 것처럼 모든 선과 악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렇게 인간은 선악을 자신이 정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며 세상이라는 공간을 만들어갑니다. 이는 단순히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인 공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판단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선이 되기도, 악이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세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전해주신 다음에도, 우리를 세상에 다시 보내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무언가를 깨달은 우리가 다시 세상에 던져지는 이유는, 자신만의 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선이 진실된 선임을 깨닫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함은 아니었을까요? 하느님의 곁에서 지내다가, 선악과를 먹으며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낸 인간이, 다시 환상에 가까운 자신의 세상을 버리고, 하느님만이 진실된 선을 볼 수 있음을 알아차리는 과정은 세상 속에서 가능할 테니까요. 거룩함, 즉 하느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는 상태는, 세상 속 눈앞에 다시 놓인 선악과가, 더 이상 탐스럽지 않아 보이는 때에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선만을 행하는 의로운 인간이란 이 세상에 없다.
- 코헬렛 7장 20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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