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재료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2. 2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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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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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와 나눔


 오늘 독서에서는 이러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친교는 나누는 것이라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독서 전문을 읽으며 친교, 그리고 나눔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독서 전문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도 일컫습니다. 그 말씀은 태초부터 있어왔으며, 우리의 곁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개자 역할을 해주고 계십니다. 독서에서 등장한 요한은 이러한 생명의 말씀을 증언합니다.

 

나눌수록 커지다


  요한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증언과 선포에 따르면, 말씀의 생명력과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나누면 자신의 것이 줄어든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생명의 말씀은 어떻게 나눌수록 커질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나눔"을 생각할 때,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무언가를 먼저 떠올릴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나누면 자신의 몫은 줄어들고, 빵 하나를 나누면 그 크기는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생명"을 우리의 소유물이 아닌, 우리에게 부여된 "힘"과 "감각"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눔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용할수록


  우리는 어떠한 사람의 능력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경력"을 따질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연구하고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가 지닌 능력의 발달과 연관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우리는 누군가를 가르쳐주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 역시, 그것을 계속 사용할수록 발달되며, 사용하지 않을수록 퇴화된다는 점도 우리는 인지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생명의 말씀이 자신의 안에 고이게 하지 않고, 흘려보내며 나누게 될수록, 그 사람 안에는 더 큰 기쁨과 생명력이 자라나게 됩니다. 원래부터 우리의 것이 아니었던 무언가가 우리 안에 머물게 될 때는 "나눔"이 "풍요"가 되는 것 같습니다.

 

존재를 느끼다


  생명의 말씀은 처음부터 있어온 것이며, 우리가 하느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무언가를 가리킵니다. 하느님을 느꼈던 우리의 기억과 경험을 나눈다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어떠한 대상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친교"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이 시청한 드라마나 영화를 혼자만 곱씹는 것보다, 그 내용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때 더 큰 흥미를 느끼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의 기쁜일을 나누며 누군가와 공감할 때, 그 기쁨은 배가 됩니다. 이처럼 생명의 말씀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도와줍니다.

 

친교의 재료가 되다


  독서에서는 우리의 친교가 "아버지와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삶에서 겪게 되는 우리의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 인한 우리의 수많은 판단들을 혼자만의 것으로 두지 않고, 하느님께 그리고 예수님께 고백해 봅니다.

 

 우리가 느끼고 생각한 그 무언가가 맞고 틀렸다고 결정하기 전에, 우리가 느낀 무언가를 하느님과 예수님께 공유해 봅니다. 우리의 무너짐도, 우리의 성장도 모두 친교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하느님과 나누기로 선택할 때,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재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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