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0. 2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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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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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와 같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예수님은 다양한 비유와 표현으로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를 전해주십니다. 겨자씨와 같다는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의 어떠한 모습을 전하고자 하셨을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무엇과 같을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고자, 세상에 내려오셔서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경험한 무언가를, 그것을 겪어보지도 못한 이들에게 전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경험한 무언가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를 말씀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곰곰이 생각하신 끝에, '겨자씨'와 '누룩'이라는 두 가지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이야기해주십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비유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대상은 모두 매우 작았던 것이 점점 커지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지요.

 

진정한 변화


 우리는 보통 하느님의 나라를 떠올리면서 우리가 경험한 "공간"의 개념을 먼저 그리곤 합니다. 상상 속의 하느님 나라는 넓은 대지와 우람한 성곽이 있고, 찬란한 햇빛과 따스한 바람이 불며, 평화롭고도 풍요로운 어떠한 공간의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공간적인 개념에만 국한되어 하느님의 나라를 생각한다면, 정원에 심은 겨자씨가 커다란 나무가 된다는 비유는 쉽게 와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비유에서 드러난 변화는 "크기"보다 그 "상태"에 초점을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단순히 공간적이고도 물리적인 개념이 아닌, 우리의 마음이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어떠한 "상태"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넓은 집에서 산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이 아니며, 좁은 집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불행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진짜 행복은 물리적이고도 공간적인 것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생각해보면 비유에 등장하는 겨자씨 역시, 크기만 커졌던 것은 아닙니다. 작은 겨자씨에서 커다란 겨자씨가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이 깃들 수 있는 커다란 나무로 존재가 변화된 것이지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다


  하느님의 나라는 자그마한 무언가로부터 시작됩니다. 누군가는 겨자씨를 심고, 누군가는 누룩을 밀가루에 집어넣었던 것처럼, 하느님의 나라 역시 그곳을 향한 첫 발걸음이 시작되어야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여정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조금이라도 맛보게 된다면, 우리는 그 여정에서 이미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삶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씨앗을 심으며, 그 씨앗이 자라나 맺을 열매를 꿈꿉니다. 그리고 그 씨앗을 키워 열매를 맛본 사람은 씨앗이 곳 열매가 된다는 사실에 즐겁게 씨앗에 물을 줄 것입니다. 우리는 여행을 할 때, 자신이 향하는 곳을 지도로 확인하고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아직 몸은 그곳에 도착하지 않았지만, 여행이라는 설렘과 행복은 이미 목적지를 정한 그 순간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지요. 목적지에 때가 되면 도착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우리의 마음은 이미 그곳에 머물며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가 향하는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잘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개의치 않을 때도 많지요. 사람은 자신이 마음을 두는 곳을 향해 자신의 몸도 따라갑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나라에 마음을 두어야 하며, 마음을 둔다는 것은 어쩌면 정원에 겨자씨를 심는 것과 밀가루에 누룩을 넣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하느님의 나라를 향한 발걸음 없이는 하느님의 나라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겨자씨를 심지 않고 나무를 바라는 마음과, 누룩을 넣지 않고 밀가루가 부풀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루어질 수 없는 무언가를 막연하게 바라는 마음과 닮아있습니다.

 

첫 발걸음


  우리의 첫 발걸음이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지향과 꾸준한 나아감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하느님의 나라로 이끌어줄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생각보다 한순간의 기적만을 바라고 꿈꿀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순간의 기적만을 꿈꾸는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을 향한 여정을 방해합니다. 우리는 한순간에 하느님과 같아지고자 했던 마음이 선악과를 따먹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예수님께 무작정 표징과 기적만을 요구했던 군중의 마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결과로 이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느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일확천금을 바라고,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사랑을 바라며, 섬광처럼 번쩍이며 찾아오는 기쁨과 행복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나라, 즉 우리의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순간적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그것을 바라는 진정한 마음이 계속될 때, 마음속 정원에 심긴 겨자씨처럼,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우리 안에서 자라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


 예수님의 치유의 장면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기적과도 같아 보이지만, 예수님께 치유는 아픈 이들이 걸어왔던 여정과 이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의 상태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시간이 필요했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뜨여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무언가를 "짠"하고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으며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언가의 열매보다, 그것을 맺게 할 씨앗을 건네주시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하느님의 나라라는 '목적지', 혹은 '열매'를 위하여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를 생각해봅니다. 어떠한 씨앗과 누룩이 우리의 마음에 심겨 자라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보지 발견하지 못하고 괴로움 속에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하느님의 나라, 혹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점점 키워나가야 할 우리의 마음속 씨앗을 찾아보며, 우리의 존재가 조금씩 자라나 하느님이 거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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