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하느님처럼 되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0. 2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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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예수님

머리이신 그리스도


 오늘 독서에서는 이러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머리라는 표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며,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지, 독서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독서 전문

그분께서 올라가셨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올라가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내려오셔서 말씀을 전하시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지요. '올라가셨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본래 위치와 자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높은 곳에서 만물을 비추며 생명을 전해주시는 예수님은, 자신이 위로 올라가 빛을 뿜어냈을 때, 사람들이 그 생명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상에 오셔서 직접 땅을 일구고 올라가셨습니다.

 

 아무리 해가 밝게 빛나고, 비가 땅을 적셔도, 땅이 제대로 가꾸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농작물이 잘 자라나지 못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몸소 땅으로 내려오셔서, 밭을 가꾸고 씨를 뿌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땅에서도 그리고 하늘에서도 우리들의 생명을 위해 항상 노력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은 바오로 사도가 표현한 몸과 머리의 비유에서도 드러납니다. 

 

머리와 몸


 우리의 육신은 크게 머리와 몸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머리는 몸에게 신호를 보내어 생명을 찾아가게 하며, 몸이 머리의 뜻을 실행하며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요. 머리는 위치적으로도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기능적으로도 가장 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의 일치 여부는 그 존재의 생명력을 드러내 줍니다. 비유를 떠올리다 보니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생명을 우리와 나누며 함께하기로 결정하신 것이구나.' 

 

 머리와 몸은 붙어있어야 그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머리만 있다고 해서 살아갈 수도 없으며, 몸만 있다고 해서 살아갈 수도 없지요. 무한한 하느님이 '사람의 아들'이 되기로 택했던 것은, 유한한 우리들의 머리가 되어 죽음으로 나아가던 우리의 존재를 함께 끌어올리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처럼 되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존재로 세상에 내려오셨고, 몸소 우리의 머리가 되기로 선택하시면서, 우리에게 생명에 대한 희망과 기쁨을 전해주셨습니다. 몸은 어떠한 머리에 붙어있는가에 따라서 그 존재가 결정됩니다. 우리가 만약 예수님이라는 머리에 붙어서 살아간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일 테지요. 

 

 사람은 분명 하느님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에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하지만 유한한 존재인 사람이 무한한 존재인 하느님처럼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요. 하느님은 불가능했던 사람의 마음마저 실현시켜주기 위해, 스스로 사람이 되기를 택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열매를 먹으며,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닮아가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포도나무와 나뭇가지의 비유처럼,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으며 살아가는 몸이 되기를 택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몫을 다하며, 몸으로써의 저마다의 기능을 수행하며, 예수님의 일부가 되어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몸이 된다는 것은, 그분을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 즉 그분의 사고와 생각, 그리고 가르침을 통해 우리의 머리를 그분께 드리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머리를 드리다


  우리가 예수님의 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머리를 예수님께 드리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머리를 드린다는 표현은 우리의 목숨을 드린다는 표현과, 우리의 의지와 생각을 모두 드리는 것과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의 존재를 포기하고 기생을 선택하는 방향이 아니라, 예수님을 머리로 두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성장해가는 그러한 그림을 그려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며, 그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나갈 때, 행복과 만족을 느끼기에 그렇게 불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채워짐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즉 사랑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따르고, 무언가를 추구하며, 어디론가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은, 그리스도라는 머리를 만날 때까지 계속되는 우리의 본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열망이 실현되어 평화와 안식을 얻고,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때가 찾아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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