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하느님이라 부르기로 선택하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6. 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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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의 반지
모래 위의 반지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은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입니다. 이 말씀 구절을 통해, 하느님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단순히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무엇일지, 독서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독서 전문

양다리


 독서에서 등장하는 엘리야는, 하느님과 바알에 양다리를 걸쳐놓은 사람들을 나무랍니다. 사람들은 위험을 최소화하고, 두려움을 줄이기 위해, 두 가지의 선택 모두에 자신의 다리를 걸쳐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양다리를 현명한 선택이라 믿어버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불러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양다리라는 말은 부적절한 연인관계를 떠오르게 합니다. 자신의 짝을 정하지 않고, 동시에 여러 명을 연인으로 삼는 것을 양다리라고 부릅니다. 연인관계는 일방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취하는 관계가 아니기에, 동시에 여러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서로의 진전을 방해합니다. 이처럼 양다리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하나만 있어야 하는 자리에 둘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자리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임금과 백성, 그리고 연인에 비유하고는 합니다. 이 관계는 모두, 진정한 하나의 자리만 허용하고 있지요. 많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이러한 관계를 자신이 향하는 "목적지"로 바꾸어 생각해봅니다. 동시에 여러 목적지를 두고 몸을 움직이려 한다면, 그 어디도 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 곳의 목적지를 차례로 방문하고자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나아가야 할 방향과, 최종적으로 내가 있을 목적지를 정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에, 자신이 마음이 가는 하나의 자리로 향하는 것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선택의 순간


 양다리를 걸쳤다는 것은, 아직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였음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결국 우리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합니다. 아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비로소 자신의 자리가 마련될 수 있습니다. 선택을 할 때에는 저마다의 기준이 있습니다. 독서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기도에 응답을 기준으로 자신이 따를 "하느님"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바알을 숭배하던 사람들은 풍요와 번영을 바랐습니다. 그것을 충족시켜줄 것 같은 대상을 모시며 따라갔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약속을 들어줄 수 있는 존재는 바알이 아닌, 하느님이심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바알이 아닌 하느님을 따르게 되었지요.

 

진실을 마주하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줄 수도, 또 거두어갈 수도 있는 존재가 하느님임을 마주할 수 있는 때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한 때를 마주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렇게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 주님을 "하느님"이라 부르며, 원래부터 존재해왔던 하느님을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바라던 어떠한 조건 때문에, 특정한 대상을 하느님으로 만들고, 하느님이라 부르며 따라가고 있다면, 아직 진짜 하느님을 마주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 표현에서는 우리의 선택이 강조되기보다, 마주하게 된 사랑을 받아들이는 느낌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정했기에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어떤 이의 진실된 모습을 마주하고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지요.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 요한복음 15장 1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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