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8. 9. 11:44
반응형

어린 아이
어린 아이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복음 속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성경에는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논쟁 끝에 답을 찾지 못한 제자들은, 어떠한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인지를 예수님께 물어보지요. 이에 예수님은 어린이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늘나라에서는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가장 큰 사람이다."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몇 가지 의문점들이 생깁니다.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을 '퇴행'이 아닌 '회개'로 표현한 점과, 그것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신 것, 그리고 어린이를 가리키며 '자신을 낮추는 이'라고 표현한 점은,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들을 만들어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표현을 이해하기 위하여, 당시 상황을 상상해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당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중에는 예수님의 곁을 항상 지키겠다던 제자들도 있었고, 가르침을 얻기 위해 모여든 학자들도 있었으며, 예수님의 정체를 시험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도 있었지요. 또한 자신의 아픔을 치유받기 위해 찾아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답을 듣고자 발걸음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에게는 각자의 목적이 있었으며,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예수님의 곁을 지켰지요.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 가운데 있었던 어린아이는 조금 달랐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르던 것도 아니고, 아픈 곳이 있어서 치유받기 위해 예수님과 함께 걷던 것도 아니지요. 또한 어떠한 가르침을 위해서 어려움을 견뎌내고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다만 예수님이 좋아서,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그렇게 예수님의 뒤를 졸졸 따라왔던 것입니다.

 

큰 사람이 된다는 것


  예수님을 스승님이라 부르며, 수많은 가르침을 요구해왔던 제자들에게는 '큰 사람'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가르침을 얻어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더 멀리 볼 수 있는 커다란 존재가 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이러한 욕심이 없었기에,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될지는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지요. 어린아이에게는 단지, 하느님, 즉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이러한 아이의 이러한 심정을 바라본다면, 왜 예수님께서 '회개'라는 표현과, '자신을 낮추는 이'라는 표현을 어린이에게 사용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선악과를 따먹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뱀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느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며 꼬드긴 거짓말에 넘어간 것도 이 때문이었지요. 만약 사람이, 더 크고 높은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욕구보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을 더 소중히 여겼다면, 선악과는 사람에게 유혹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장 큰 사람


  어린이, 즉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 자체만을 기쁨으로 여기며, 하느님과 함께하고 있음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 바로 이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 태초에 하느님께서 창조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진정한 "회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어린이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하느님께서 함께해주시는 것뿐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자세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어쩌면 하늘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것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닌, 오직 하느님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해주는 하느님이 아닌, 그냥 하느님의 함께해주심을 바라며, 그 안에서 기쁨과 사랑을 느끼는 그런 어린이 같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아닐까요?

 

 

길을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예수님은 뒤이어 작은 이를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님을 이야기하십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각자의 삶에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어쩌면 삶에서 길을 잃은 것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섣불리 삶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중요시 여기며 살아가는 각자의 가치관을 업신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여정 안에서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맞게 다가오실 것이며, 하느님의 이끄심은 자신이 중요시 여기는 그 무언가를 통해 실현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길 잃은 양들을 찾기 위해 지금도 예수님은 모두의 삶에서 퍼져나가고 계시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 눈에는, 뭣도 모르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어린아이가 위대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깊은 가르침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따라다니기만 하는 그 모습은 오히려 미련해 보이고 안쓰러워 보였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 어린아이를 가운데로 세우며, 제자들의 본보기로 삼습니다. 이처럼 스스로가 하느님의 길에서 선두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제자들이 겪었던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때로는 주변의 사람들이 "틀린"길을 걸어가는 것 같아서, 미운 마음이 들 때도 있고, 또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길은 우리와 모습이 "다를"뿐, 결국 그 여정의 끝에서 우리와 함께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여정을 나아가는 입장에서, 타인의 길을 교정해주려 하기보다, 우리의 길에서 만난 예수님의 흔적들을 나누며, 기쁨을 함께하는 것이, 세상 속에서 함께 여행하고 있는 형제자매와의 바람직한 관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채널 친구 추가 버튼
카카오톡 채널 친구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