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하지 않고서는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이 구절을 읽고 몇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에서, 예수님의 도움 없이는 그 길을 걸을 수 없다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을 거치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일까요? 복음 전문을 읽으며,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은 제자에게 스스로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소개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느님께로 향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십니다.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는 예수님께 제자들은, 하느님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에 예수님은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은 하느님을 알게 됨을 뜻하며, 예수님을 본 것은 하느님을 본 것이라는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본다는 것, 그리고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을 본다는 것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시각적인 바라봄만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을 바라봄은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는 것, 다시 말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존재를 가장 강렬히 느낄 때는, 그 대상을 사랑할 때와 그 대상이 나에게 주는 사랑을 느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신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을 지닐 때가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신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가를 물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 느낄 수 있는 것일까요?.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다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방법이 자신임을 알려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자신의 외아들을 내어주신 것 자체부터 하느님의 사랑 표현은 시작됩니다. 사랑, 즉 하느님의 관심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우리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우리의 약점을 알려주며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얽매어있는 것을 보게 하시고 그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어떠한 상황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담겨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올바르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을 모두 이루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일을, 일종의 외상을 달아놓는 개념으로만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상장부에 예수님의 이름을 적어놓고 원하는 것을 마구 집어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빕니다."라는 기도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청하며, 예수님의 가르침과 목소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한다는 것은 주문을 외치며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청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예수님을 느끼고, 함께 걸어가겠다는 마음가짐을 고백하는 것일 겁니다.
그리하여 우리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따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 테살로니카2서 1장 12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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