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행복할 사람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1. 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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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자라나는 새싹

행복하여라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어떻게 흡족해지는 것이며, 어떻게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행복해지다


 예수님은 다양한 사례들을 나열하시며, 그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리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질 것이라는 이야기이지요.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열한 사람들의 경우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현실을 살아가다보면, 마냥 희망을 품기에는 너무나도 고되고 불공평한 상황에 처해질 때도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현실이라고 말하는 지금 이 순간은 행복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을 보고 행복을 말씀하셨던 것일까요?

 

좋겠다


 우리는 흔히 좋은 부모를 둔 자식을 보고 "좋겠다."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자식을 둔 부모에게도 "좋으시겠어요."라고 이야기하지요.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그들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묻다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입에서는 우리의 판단과는 다른 대답이 나올 때도 있지요.

 

 그들이 당장 처한 현실을 답답하거나 힘들고 괴로워보일지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상태를 "행복할 것이다", 혹은 "기쁘고 즐거울 것이다"라고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행복"의 근거를 그들이 당장 처한 순간에 두기보다, 그들이 앞으로 누릴 수 있는 어떠한 것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행복을 예측하기에 그러한 것일테지요.

 

 누군가는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을 행복을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좋은 직장에 취직한 사람의 행복을 부러워하며, 또 누군가는 좋은 사람과 결혼한 이를, 또 누군가는 경제적인 부를 이룬 사람이 행복할 것이라 여깁니다. 이처럼 행복에 대한 부러움과 추측은, 그 사람이 처한 순간이 아닌, 그들이 얻게 될 무언가를 바라보면서 시작되지요. 

 

진리, 확실한 판단


 미래와 진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판단은 모두 "추측"일 테지만, 예수님의 판단은 그들의 추측성 판단과는 확연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그 행복에 있던 존재이며, 그 행복으로부터 온 존재입니다. 또한 진실만을 말씀하시며, 말씀하시는 것이 진실이 되는 하느님이시지요. 그러한 존재가 이야기하는 "행복"이라는 판단은 무엇보다도 확실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시선과 우리들의 시선은 무엇이 달랐을까요? 무엇이 달랐기에 예수님께서 보셨던 행복,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요? 우리는 행복을 생각할 때, 지금 자신이 처한 순간만을 바라봅니다. 그 순간이 영원이 되어, 지금의 감정과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하지요.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이 변화하고 흘러가듯, 결국에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 역시 지나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와 상태는, 우리의 마음이 향한 곳으로 흘러가게 되지요. 마치 여정을 마친 사람이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듯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를 향하기로 정한 사람은 조금씩 그곳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행복을 향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방향으로 여정을 이어나갑니다. 이러한 여정은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우리의 존재를 조금씩 이동시키지요. 예수님께서 나열한 사람들은 모두 "행복을 지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현재는 그렇지 못해도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사람, 즉 행복에 목말라있는 사람은 그곳을 향해 움직이게 됩니다. 행복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은 행복이라는 샘물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모든 일들은 참된 행복을 알아가는 재료가 됩니다. 

 

 당장의 슬픔이 불행이 되어리는 순간은, 지금의 슬픔이 우리 존재의 종점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가두어버릴 때 입니다. 이와 같은 자신을 향한 "사망선고"는 우리의 영원한 여정을 멈추게 하며, 앞으로 다가올 빛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때 행복을 느낍니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앞으로 다가올 하느님의 위로가 있을 것음을 깨달았을 때일 것입니다.

 

불행이 되지 않다


  아픔이 지나고 다가올 성장과 변화를 보는 사람은 행복해집니다. 키가 크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찾아오는 성장통은 여전히 아픔을 주지만, 불행이 되어버리지는 않습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 느끼는 근육통은 아픔이 될 수 있지만 불행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행복은 많은 이들의 노고에서 피어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느껴지는 것에만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을 때, 행복은 현실에서도 피어납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영원함"이 같은 모습으로 그대로 유지하는 "멈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으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원한 생명 또는 하느님 나라는, 스스로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상태로만 머물러있는 "멈춤"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행복은 "멈춤"이 아닌 "흐름"에 놓여있습니다. 우리이 멈춤이 아닌 "흐름"이 있음을 예수님을 통해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행복,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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