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미래에 대한 두려움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7. 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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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참새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예수님의 마음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제자와 스승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제자와 스승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으며, 제자는 스승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지요. 우리는 스승으로 모시는 존재를 자연스럽게 닮아갑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모시는 스승을 보면, 그 제자의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베엘제불을 주인, 혹은 스승으로 모시는 이들의 앞날을 말씀해주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따르는 존재를 닮아가고 또 그와 같이 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사도들은 베엘제불을 따르는 무리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세상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은 존재들인 그들도, 결국 우리의 영혼을 건드릴 수는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어두운 데에서 들은 것을 밝은 데에서 말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이끄심, 그리고 가르침을 어두운 데에서 들을 때가 많습니다. 묵상 중 내면 속에서 울려 퍼지는 생각과, 삶에서 문득 느끼는 감정들로 하느님의 흔적을 느낍니다. 우리는 그 순간들을 밝은 데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려웠던 시기에서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주셨고, 괴로웠던 시기에도 우리를 어떠한 사랑으로 보살펴주셨는지를, 내면의 밖인, 밝은 데에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막연하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스승이라는 존재를 따라가며 살아가기도 하지요. 어떤 이들은 그러한 과정에서 두려움을 덜어내기 위해, 사주를 보기도 하고, 신점을 보기도 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타인에게 확인받으며,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또 다른 무언가에 더 얽매이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말이지요.

기독교에서는 미래를 점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도록 정확하고 예리하게 우리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맞추는 점사들을 듣게 되면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 혼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특히 신점은 신명이라는 영적 존재를 "스승"이라고 모시는 "제자"인 무당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들의 예견과 통찰력은 분명 보통의 사람들보다 뛰어나기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알아차리지요. 때로는 그들의 통찰력으로 인해 위로를 받고, 확신을 얻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아닌, 다른 영적인 존재에 주기적으로 의존한다면, 자신이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말에 의존하고 판단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가는 제자가 되겠다는 선택일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스승으로 모시기 전, 그들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인지, 그리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단지 지금의 우리보다 조금 더 앞에서 걸어간다고 하여, 무조건 우리의 스승과 주인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의 여정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자의 여정을 통해, 배우고 겪으며 알아가야 할 몫이 있습니다. 이를 미리 알고 누군가가 훈수를 두며 개입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을 빼앗는 것과도 같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머리카락마저도 다 세어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돌아갈지도 이미 알고 계실 테지요.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고 알아차려야 할 것들이 있기에, 그 여정을 허락하신 것일 겁니다.

미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자유가 아닌 구속을 가져다줍니다. 반대로 하느님을 따르는 길은 우리에게 자유와 믿음을 가져다주지요. 자신이 따르는 스승이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면, 그들의 말을 따르며 살아가는 길은, 자유로움보다 또 다른 얽매임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뛰어넘지 못할 테니까요.

참새보다 더 귀하다


우리의 미래가 무엇이 되었든, 모든 일은 하느님의 권한 아래 있음을 믿는다면, 불행으로 보이는 일들마저 큰 두려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에게 맡겨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반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영역은, 살아있는 이들이 헤쳐나가야 할 것들이지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보다, 사람인 우리들이 하느님에게는 더 귀하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자체에 집중하는 것보다, 그 사건으로 느껴지는 하느님의 손길에 더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 그리고 하느님이 바라보고 계신 자신을 알아가는 곳일 테니까요.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안다고 증언하는 것은, 단순히 공공장소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만을 외치는 행위를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언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예수님이 함께해주셨고, 또 무엇을 가르쳐주셨고, 앞으로의 어떠한 일들에서도 함께해주실 것을 믿고 있음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만을 스승으로, 또 주님으로 고백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든 상황에서는 예수님께 도움도 청해보고, 억울한 상황에서는 예수님께 한탄도 해보고, 기쁜 상황에서는 예수님께 감사도 드리면서,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각자의 특별한 여정을 꿋꿋하게 걸어 나가 봅시다. 예수님은 항상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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