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7. 1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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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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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 구절은 내가 아닌, 타인도 사랑해야 한다는 커다란 의무감을 주는 듯한 말씀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나의 이웃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율법 교사의 질문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던집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이었지요. 예수님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 율법 교사에게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율법 교사는 이 질문에 "네 마음, 목숨, 힘 그리고 정신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고 적혀있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이 대답이 옳았음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산다면,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 문장대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닌 듯합니다. 먼저 마음, 목숨, 힘, 그리고 정신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사랑에 쏟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지닌 힘을 통해서, 사랑을 표현할 때가 있지만, 우리의 정신은 사랑을 향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목숨을 바쳐 누군가를 사랑하더라도, 마음으로는 그 대상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할 때도 있지요.

 

부모의 자녀 사랑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일터에 나가고, 집안일을 하며 온갖 힘을 다합니다. 자신만을 위해서는 하지 못하였을 힘든 일도, 자식을 위해서는 거뜬히 행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정신은 온통 자녀에게 향해있습니다. 자녀들이 밖에 나가 있을 때에도, 혹여 다치지는 않을까, 위험한 상황에 마주하지는 않을까 하면서 말이지요. 몸은 떨어져 있어도, 자녀가 잘 살아가고 있을지 생각하며, 정신은 늘 자녀 곁에 머물러있기도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목숨을 내놓기도 합니다. 자녀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나누어주기도 하고, 배고픔을 느끼는 자녀를 위해, 자신의 먹을 것을 내어놓기도 하지요. 위험천만한 사고 현장에서는 자신의 목숨보다, 자녀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할 때도 있습니다.

 

 부모는 마음으로 자녀를 사랑하기도 합니다.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들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은 목숨과 마음과 힘과 정신이 그 대상을 향할 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누가 나의 이웃인가


 율법 교사는 누가 자신의 이웃인지 구별해주기를 바라며,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직접 그 이웃의 경계를 규정지어주시지 않으십니다. 단지 사마리아인의 일화를 소개하며, 이웃을 대하는 사랑의 형태를 알려주실 뿐이었지요.

 

 일화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은 다친 이웃을 향해 마음과 목숨과 힘과 정신을 다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마리아인은 다친 사람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친 사람은 강도를 당했던 사람이었기에, 그를 어설프게 도와주다가는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목숨"보다 다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로 선택하였습니다. 또한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힘"으로, 다친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몸은 다친 사람의 곁을 떠나야 했지만, 여관 주인에게 돈을 맡기며, "정신"은 다친 사람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이웃이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이 일화 끝에 질문 하나를 던지십니다. "강도를 당하여 다친 이에게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우리는 흔히 '누가 나의 이웃인가?'라는 질문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누가 내편이고, 누가 나한테 이득을 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기에, 이웃의 조건에 충족하는 이들을 물색하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웃의 자격조건이 아닌, 우리가 누군가의 이웃이 될 수 있는 상태인지를 확인해주시는 듯합니다. 강도를 당하여 다친 사람은, 사마리아인에게 어떠한 이득도 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사마리아인은 다친 사람과 아무런 연고도 없었지요.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마음과 목숨과 힘과 정신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였습니다. 사마리아인은 다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의 결실, 그리고 대상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찾아다니며,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웃은 어찌 보면, 사회적인 관계에서가 아닌, 사랑이라는 관계 안에서 태어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웃을 찾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베푸는 순간 이웃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 사이에서 자녀가 생깁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의 결실이자,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웃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맺어가는 사랑의 결실이자 그 대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랑의 순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사랑의 순서를 알게 해 주십니다. 부모 간의 사랑이 없으면, 자녀에 대한 온전한 사랑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해 주십니다.

 

 사랑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다 보면, 하느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사랑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지요. 하느님은 분명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하면, 하느님이 창조한 우리를 서로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므로 만약,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면, 하느님을,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먼저 되돌아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은 하느님과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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