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믿음과 사랑이 밥을 먹여줍니까?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9. 2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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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과 오아시스
사막과 오아시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


 오늘 독서를 통해 하느님은 이러한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이 구절은 삶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가치들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러한 가치들을 실천하거나 추구하기는 어려울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독서 전문을 읽으며, 나열된 가치들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독서 전문

하느님의 사람


 오늘 독서의 말씀은 "하느님의 사람이여,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말 뒤에 나열된 단어들은, 하나같이 실천하기가 매우 어려워 보이는 가치들이지요. 이러한 가치들을 추구하는 것은 힘겹고 어려운 여정이기에, 사도 바오로는 믿음을 위하여 훌륭히 싸우라는 격려를 해주는 것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들의 신앙고백이, 영원한 생명을 향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도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따르는 예수님 또한, 세상 속에서 그러한 고백을 멋지게 해내었으며,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까지, 그러한 고백을 해낸 이들은 자신의 몫을 다하여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말입니다.

 

고백? 때? 실천?


 하지만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오시는 때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하느님의 사람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계명들은 정확히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우리의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신비한 영역이 있음을 체험하며, 우리보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가 있음을 짐작할 때가 찾아오지요. 그러한 우리에게 하느님은, 말씀을 통해 스스로를 보여주시며 다가오시고,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이끌어주셨던 그 존재가 "하느님"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종교를 공표하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상대를 평가할 때, 상대방의 지위나 소속, 외모나 능력, 가문과 환경 등을 눈여겨봅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따지는 이유는 그 자체가 상대를 정의한다기보다, 그러한 요소들로 상대가 "추구"하거나, "추구"해왔던 가치들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치관을 바라보다


  우리는 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상대의 "가치관"을 살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에 앞서 수많은 조건들을 따지는 것 역시, 과거에 상대가 추구해왔던 것들과 상대가 말하는 스스로의 가치관을 비교해보고, 상대가 앞으로도 추구할 가치관을 추측해보는 과정일 것입니다.

 

 부를 축척해온 사람은 "경제적인 가치"를 추구해왔을 것입니다. 외모가 출중한 사람은 "미적 가치"를 추구해 왔을 것이며, 체력이 좋은 사람은 "건강"을, 지식과 예절을 중요시 여겼던 사람은 "교육"을 추구해왔을 것입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사람들은 자신이 쫓아온 가치들을 앞으로도 추구해갈 것이며, 그 길에서 행복을 찾는 여정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신앙을 고백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하느님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여태 추구해왔던 가치들보다, 의로움, 신심, 믿음, 사랑, 인내와 온유를 우선시하며 추구해나가는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신앙고백은 종교의 선택으로도 표현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의 변화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증거 하는 가장 확실한 표징은, 바로 그 가치를 정말로 우선시하며 살아가는 그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통해,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여정을 선택합니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라는 누군가의 한탄은, 사랑 끝에는 우리를 살게 할 생명이 없다고 생각하는 신념에서 나오는 것일 테지요. 우리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밥을 먹여줄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잠시의 포만감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가치들을 추구하는 여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부담이 된다면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따라야 할 계명들과 추구해야 할 가치들이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그 끝에 생명이 있음을 알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아이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러한 노력으로 얻게 되는 무언가를 아직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삶 속에서 "성공의 경험"을 축적해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성공은 세상적인 성공이라기보다,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가치들을 추구한 후,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생명"의 요소를 체험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매 순간, 하느님의 계명과 가치들을 우선시하며 살아갔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 여정의 끝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는 것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바라보며 우리의 시선을 눈앞의 이익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돌려봅니다. 단 한 번이라도, 예수님이 걸으신 길 위에 진정한 생명이 있음을 경험할 수 있다면, 의로움, 신심, 믿음, 사랑, 인내와 온유,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은 더 이상 부담이 아닌, 희망과 기쁨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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