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믿음이라는 시작점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1. 1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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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기찻길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는 이러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 자비를 간청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통해 그 간청이 이루어지는 것인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오늘 복음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앞이 보이지 않았기에, 눈앞에서 예수님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그분을 알아볼 수 없었지요. 그러나 때마침 주변 사람들은, 눈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 "예수님이 지나가심"을 알려줍니다.

 

 그러자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무작정 예수님의 이름을 외쳐댑니다. 고개를 어디로 향해야 할지도 모른 채, 대답이 돌아올지도 모르는 허공에 소리 지르듯이 울부짖습니다. 사람들은 자칫 무모해 보이는 그 사람의 외침을 막아보지만, 눈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더욱더 크게 소리칠 뿐이었습니다.

 

 

점점 흐려지다


 우리는 예전에는 느꼈지만, 지금은 잊고 살아가는 무언가를 알아차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어릴 적 아무 걱정 없이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던 기억들은 점점 흐려지고, 하루하루를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는 일상만이 남게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한때는 하느님의 말씀을 되뇌며, 모든 일에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미래를 걱정하며 두려움에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하느님의 손길은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우리의 기도와 여정이 어떠한 방법과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다


 그럴 때면 오늘 복음 속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라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는 때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정확히 어떠한 기도를 드려야 할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지 못하더라도, 예수님을 애타게 찾으며 외쳐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외침을 들으시고, 가던 길을 멈추어 눈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데려오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라고 물으셨고, 그 사람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며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합니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분명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분의 모습을 그려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목소리만으로도 자신의 바람을 간절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믿음을 키워나갔지요.

 

청할 수 있으려면


  예수님께 무언가를 청한다는 것은 우리의 부족함을 예수님께서 채워주실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찾으며 부르짖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마음을 바탕으로 가능해집니다. 예수님은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청하는 그 사람에게 분명,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힘


 실제로 사람의 신체에서는 그 몸의 주인의 의지와 믿음에 따라 기적적인 일이 펼쳐질 때가 있습니다. 신경이 끊어져 하반신 마비가 된 사람이, 회복에 대한 의지와 믿음을 지니고 꾸준히 재활치료를 진행한 결과, 다시 걷게 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방향을 정한다면 그 방향으로 나아갈 힘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구원한 것이 "그 사람의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능력"으로, 또는 "예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되었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지요.

 

믿음이라는 시작점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우리의 선택, 즉 우리의 "믿음"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의 이끄심이 이루어지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걸음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와, 그 아이의 아버지를 상상해봅니다. 아버지는 어린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아이를 데려다줄 수 있습니다. 그곳이 어린아이에게 위험한 곳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가 아버지를 믿지 못한다면, 아버지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있더라도 아이를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기도는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도와줍니다. "믿음"은 하느님께 의지하기로 하는 우리의 "선택"이며, 그 안에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있음을 인정하는 "받아들임"입니다. 수많은 근심과 걱정들에 가려져서 앞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외침을 기다리실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봅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온전히 우리의 삶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가 느꼈던 행복과 기쁨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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