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자신이 무엇을 정말 원할 때 (표징을 요구하는 것)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2. 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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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를 걷는 사람
길 위를 걷는 사람

표징을 요구한다는 것

 살아가면서 한 번쯤 표징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표징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고, 또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표징을 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복음 속 다른 이야기에는 표징을 직접 보여주시는 사건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표징에 대해 복음 전문을 살펴보며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표징이 없으면 믿지 않는다

 표징에 큰 무게를 두다 보면, 아무래도 표징 없는 관계를 지속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듯합니다. 때로는 표징이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표징만이 강조되면 관계의 의미가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의 징표로 반지를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반지가 있어야만, 그들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작이 될 수는 있으나

 때론 표징이 누군가의 관심과 신뢰를 불러일으켜, 새로운 길을 걷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표징 자체는, 그 길을 지속해서 걷게 할 힘이 없습니다. 어떠한 길을 계속해서 걷고자 하는 힘은, 자신의 의지와 마음속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지속성 

 어쩌면 무언가를 지속하게 해주는 마법 같은 징표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지속성은 외부에서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마음과 선택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운동을 할 때, 코치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운동을 지속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운동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바탕이 되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사막을 걸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한 모금의 물은 표징과도 같습니다. 길을 걷다가 지쳐 쓰러진 사람을 더 나아가게 하는 생명수가 될 수는 하지만, 가기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영약이 될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 길을 나선 이유

 가끔 우리는 길을 처음 나설 때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표징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원했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이러한 오류에 빠집니다. 선택이 아닌 대가가 우리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대가를 위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눈을 돌리고,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당근만 보고 달리는 말

 눈앞에 있는 당근만 바라보고 달리는 말은 자신이 가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사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당근을 보고 달렸던 순간이 있었더라도, 이제는 자신이 달리고자 하는 방향과 그 마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근에 눈이 먼 말에게 또다시 당근을 주지 않습니다. 그 말에게 당근을 주는 것은, 말을 위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험하는 마음으로 표징을 요구한다는 것

 가끔 시험을 하는 마음으로 표징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당신이 신이라면 이 기도부터 들어줘봐"라는 식의 청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믿음을 위한 청이 아닌, 비겁한 협박일 수 있습니다. 표징을 통해서라도 믿고 싶은 간절한 마음인지, 아니면 표징을 통해 "어디 한 번 내가 너를 믿게 해 봐"라는 요구인지를 스스로 구별해야 합니다.

바리사이와 토마스의 차이

 복음 속 바리사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하늘의 표징을 요구합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 토마스는 부활한 예수님에게, 체험을 통해 자신이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표징을 요구하였고, 토마스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표징을 원할 때

 세상을 살아가면서 표징을 원할 때가 있습니다. 표징을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그 길을 가고 싶어 하는 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길이라면, 표징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표징에서만 그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금방 그 길을 걸을 수 없게 됩니다. 또한 표징만 보고 달려가는 길은 행복한 여정이 될 수 없습니다. 표징은 지치고 나약해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샘물이지,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누군가를 유인하는 미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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