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불가능한 일들을 마주했을 때 (의탁의 순간)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2. 2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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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안에 들어간 배

가능과 불가능

세상의 모든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듯합니다. 자신이 실현할 수 있는 "가능"한 일들과,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불가능"한 일들로 말이죠. 오늘 복음 말씀 구절에서는 이러한 경계를 허무는 듯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경계는 사람이 아닌 하느님에 의해 허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 전문을 살펴보며, 불가능한 것은 무엇이고, 또 그것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생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

복음에는 정말 재밌는 비유가 등장합니다. 불가능한 일의 한 예시로,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들은, 하느님께는 실로 가능한 일들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사람에게 가능한 것

복음 초반에는 한 사람이 예수님을 선하다고 표현하며 가르침을 받으러 옵니다. 이때 그 사람은 자신이 계명을 지켜온 것을 강조합니다. 사실 이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계명을 지키는 일은 사람에게 가능한 일로 묘사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는 제안은 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이런 것도 가능하니?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은 '이런 것도 가능하니?'라며 우리에게 더 어려운 제안을 하는 듯합니다. 복음 속 군중처럼, '그렇게 하면 누가 천국을 갈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수님의 질문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분명 사랑스럽게 쳐다보면서 질문하셨다고 기록되고 있는데 말이죠.

결국에는 마주하는 불가능

아무리 잘 맞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결국 힘에 부치는 순간은 찾아옵니다. 그때마다 자신의 역량으로 그 사람을 맞추어준다는 것은, 아직까지 그러한 차이들이 수용 "가능"한 범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지속되면서, 서로에게 수용 "불가능"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됩니다. 이처럼 모든 일에 있어서,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찾아옵니다. 어릴 적 아무리 열어보아도 열리지 않는 딸기잼 뚜껑이 생각납니다. 결국엔 아버지께 가져가서 열어달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신과 사람의 관계

우리는 흔히 신을 전지전능하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신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반면에 사람인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많습니다. 하느님은 이를 직면할 수 있도록, 우리의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들을 겪게 하시는 듯합니다. 신과 사람의 관계가 두터워지기 위해서는, 그러한 불가능 앞에서 신의 도움을 청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불가능을 직면하고 울상이 되어 돌아갔지만, 성경 속에서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믿음을 청하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불가능에 직면했을 때, 그 주도권을 그대로 자신이 쥐고 있다면, 정해진 결말에 도달하겠지만, 주도권을 하느님께 드린다면 새로운 결말이 찾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