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서로 사랑하다, 흐르는 강물처럼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5. 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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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
흐르는 강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랑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이 구절은 마치,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사랑의 명령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명령이라고 칭하신 이 말씀을 실천한 사람은 예수님의 친구가 될 것이라는 말씀도 남기십니다. 이러한 말씀에 두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사랑이 어떻게 명령으로 가능할까?' 그리고, '사랑의 실천이라는 조건을 달성해야만 친구가 되는 것일까?'

 

사랑의 시작


 우선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의 명령, 즉 하느님의 말씀에는 창조의 힘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명령은 단순히 '특정한 행동을 하여라'라는 지시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불가능했던 무언가를 가능하게 하며,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창조 과정입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태초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빛이 있어라.'라는 명령으로 빛이 생겼다고 전해집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이처럼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단순한 지시사항이 아닌,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지속


 사랑의 마음은 서로 주고받을 때 지속될 수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입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지속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일지라도 일방적인 형태로는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따라서 끝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결국, 그 사랑이 멈추어질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마음이 서로를 오고 갈 때, 비로소 사랑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물처럼 순환될 때 그 생명력이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친구와 종의 차이


 예수님께서는 친구와 종의 차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진정한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종은 어떠한 의무감에 따라, 혹은 힘의 차이로 인한 관계의 특성에 따라 주인을 따릅니다. 종은 계약으로 인해 자신의 삶과 목숨을 주인에게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발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종은 주인을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반면에 친구는 자발적인 마음으로 상대를 아낍니다. 그 어떠한 의무관계로 인하여 인위적으로 관심을 끌어올리지 않습니다. 친구는 상대의 목숨을 미리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기도 합니다.

 

사랑의 흐름, 그리고 열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열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우리가 맺게 된 열매는 지속적인 양분이 필요합니다. 그 양분은 사랑의 흐름을 통해 공급될 수 있습니다. 흐르는 강물 주면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납니다. 강물이 계속 흐르는 한, 주변의 식물들은 계속해서 자라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그러한 풍요를 가능하게 합니다. 사랑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쥐려 하는 마음"이 아니라, "흘려보낼 수 있는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 갈라티아서 5장 14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