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니겠지요?
오늘 복음 말씀 구절에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의 대사가 등장합니다.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예수님을 팔아 넘기기로 계획한 유다의 이런 반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복음 전문을 읽어보며, 예수님의 마음과 유다의 태도에 대해 조금 더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진짜 원한 것
유다는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은화 서른 닢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계약을 합니다. 은화 서른 닢이 당시 그렇게 큰돈이 아니었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유다는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 같진 않습니다. 아마 유다는 어떠한 계기로 예수님에 대한 마음이 멀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행동과 삶의 방식에 반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민족 구원의 방식과는 너무나도 다른 예수님의 구원 방식이 싫었을 수도 있습니다. 유다는 그러한 반감을 마지막까지 예수님께 표현하지 않고, 예수님을 해할 수 있으면서도 자신의 이득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심지어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로 계약한 순간 까지도, 자신이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이유를 돈으로 숨기는 듯합니다.
주님이 아닌 스승님
마지막 만찬의 자리, 자신을 팔아넘기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예수님의 뜻밖의 예언에, 제자들은 긴장하며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인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유다는 '스승님'이라고 칭하기만 하지요. 우리는 때로 하느님과의 관계에 선을 그을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단지,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스승님 정도로만 받아들일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땐,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맞지 않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기 쉬워집니다. 그러다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선택이 실제로 가능한 것일까요?
우리를 선택하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택한 것이다. 이 말씀을 조금 더 되뇌어본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또는 하느님을 팔아넘기는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때는, 자신의 선택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러한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의 선택으로 바뀐 것은 예수님의 계획이 아닌, 자신의 생명뿐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이 자유의지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할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아뢰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을 따를지, 아니면 거부할 지에 대한 선택뿐일지도 모릅니다.
반문 속에 담긴 것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다의 "저는 아니겠지요?"라는 반문에는 결여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항상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을 하느님께 고할 수는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의 반문에는, '저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반면에 유다는 '설마 저한테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요?'라는 회피만이 담겨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여러 질문들을 하십니다. 우리는 그 질문을 듣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명확히 이야기할 수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냥저냥 회피하면서, 어차피 들어주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예수님께 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예수님과의 교류 자체를 막아버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하느님께 아뢰었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자신의 아룀과,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더욱 두터워집니다.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 이사야서 7장 11절에서 1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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