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아직도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가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7. 14.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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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많은 짐을 진 차량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고된 삶에 지쳐,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위로와 안식처가 되어줍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우리의 쉼이 되어주는 예수님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무거운 짐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 속에서, 다양한 고생을 겪습니다. 그 고생이 육체적인 고통일 때도 있지만, 심적인 부담감으로 표현되는 마음속 무거운 짐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짐을 스스로에게,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코 부과할 때가 있습니다. 책임감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그 짐은, 행복이라는 미래를 쫒기만 하다가, 정작 단 한순간도 행복을 맛보지 못한 삶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을 모두 부르십니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안식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을 얻는 방법이 조금 특이합니다. 바로 우리가 둘러업고 있던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며, 예수님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것이지요.

 

안식


 예수님은 자신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온유와 겸손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멍에를 멘다면, 분명 그 짐은 편하고 가벼울 것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다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편하고 가벼워 보였던가?'

 

 예수님은 분명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남들을 위해 평생을 살고, 남들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그의 생애가, 어찌하여 가볍고 편안할 수 있다는 말일까요? 우리는 누군가의 삶과, 그 당사자가 느꼈을 마음의 짐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치 있는 삶이 되기 위해서, 늘 마음의 짐이 무거워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지요.

 

마음속 편안함


 예수님은 분명 채찍을 맞으며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올라갔지만, 마음의 짐은 그렇게 무겁지 않으셨나 봅니다. 예수님은 그 고된 길을 스스로 택하였습니다. 누군가의 강요나 권유로 그러한 길을 걸은 것이 아니지요. 자신이 진정으로 자유롭게 선택하였는가에 따라, 육체적인 에너지가 드는 같은 일이라 할지라도, 마음의 상태와 부담의 정도는 달라지는 듯합니다.

 

 굉장히 무거운 쇳덩어리를 누군가가 강제로 들게 한다면 고문일 것이지만, 스스로 그것을 원해서 든다면, 운동이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또한 학창 시절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치르지만, 공부에 대한 부담과 압박은 학생들마다 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을까요?

 

가벼운 짐


 스스로 선택한 길과 짐이더라도, 항상 가볍고 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편안한 멍에와 가벼운 짐을 질 수 있었을까요?

 

 부모님과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아이를 떠올려봅니다. 가족은 그들이 일주일 동안 먹고 마실, 모든 음식을 구매합니다. 또한 그들에게 필요한 생필품도 장바구니에 담겠지요. 아이는 마트에서 발견한 장난감도 사고 싶다고 부모에게 이야기합니다. 부모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 장난감을 장바구니 함께 담습니다.

 

 필요한 것과, 갖고 싶은 것을 장바구니에 모두 담다 보니, 집으로 들고 가야 할 짐은 아이가 전부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손에 그토록 자신이 갖고 싶어 했던 장난감을 쥐어준 뒤, 아이가 들 수 없는 나머지 짐을 들어줍니다.

 

하느님이 들어주시는 짐


 하느님도 이러한 부모의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때때로 많은 것을 생각하며, 마음의 짐을 키워갑니다. 생존을 위해, 혹은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는 모든 것들은 담아서 자신이 지고 가려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러한 것들은 하느님께서 이미 마련하신 것들일지도 모릅니다.

 

 온유와 겸손은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의탁을 가능하게 합니다. 어린아이가, 자신에게 당장 필요하다고 떼를 쓰며 갖고자 하는 것들 중에는, 정말 긴급하고 필수적인 물건은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이미 부모님이 직접 장바구니에 담아두거나, 마련해두었지요.

 

온유와 겸손


 온유는 그러한 상황을 믿고, 눈앞의 상황과 현재의 결핍에 조바심을 갖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겸손은 부모와 함께 장을 보는 아이가, 장바구니에 대한 권한이 자신이 아닌 부모에게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의 멍에가 편하고 짐이 가벼울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의 계획과 선택을 믿고 따르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해서, 눈앞의 사탕을 사주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며, 아이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때로는 아이를 위한 선택일 때도 있습니다. 아이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아이가 짊어져야 할 짐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안식은 고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생과 짧은 휴식의 반복을 '안식'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무한한 안식을 꿈꾼다면, 그것은 오로지 무한한 존재인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해질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더 큰 짐을 오랫동안 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천국을 허락하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많은 짐을 지우고 있다면, 잠시 그러한 강박을 내려놓고, 온유와 겸손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보는 것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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