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날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5. 2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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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간절한 무언가가 생길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고는 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그날'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할 것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복음 전문을 읽으며, 이 말씀 구절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청하면, 무엇이든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자신이 청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심지어 동화 속에서는 세 가지 소원만을 말할 수 있는데, 예수님은 소원의 횟수에 어떠한 제한도 두시지 않으십니다.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기만 한다면 하느님께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의구심과 설렘 사이에서 자꾸만 맴도는듯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처럼 엄청난 약속에는 단 하나의 조건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한다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시는 조건은 선행도, 봉사도, 권력도, 동정도 아닌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아무것이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면 되는 것일까요? 문득, 십계명에도 언급된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다른 것일까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절실함, 그리고 간절함


 우리는 무언가를 청할 때, 그것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인지, 응당한 것인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지를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마음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그리고 절실히 원하는 것을 청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한다는 말에는, 그 절실함과 간절함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불만으로 인해 저주가 담긴 기도와, 당장의 욕심으로 인한 세속적인 기도를 드릴 때가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그러한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서 청하기에 거리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콕 짚어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그러한 기도를 드리는 과정에는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반면에 그 무언가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든, 타인을 위한 것이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우리의 진심이며, 참된 청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진짜 우리 마음이 하느님께 전달될 때, 하느님은 그 청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에는 이루어주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에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는 듯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그 무언가를 하느님께서는, 매번 '즉시' 이루어주시지는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무언가가, 우리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 적절한 때에, 그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또한 하느님은 그 선물을 건네주시는 방법도 세심하게 신경 쓰시는 듯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그 선물을 받을 때도 있지만, 우리의 원수를 통해서 그 선물을 찾게 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고 느끼는 과정이 모두, 하느님의 선물처럼 다가오는 그런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할 그날


 복음 속 예수님의 말씀을 되뇌어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이,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보낸 예수님을 믿고 느낀 사람이야 말로, 우리의 삶에서 함께하고 계시는 그 예수님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단순히 주문이 아닌, 자신의 삶을 이끌어주고 계시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할 그날이 오기 위해서는, 각자의 삶에서 예수님의 존재를 느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죽음'이 아닌 '생명'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고, 눈을 돌린다면,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겪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랑을 느껴가는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 사도행전 3장 1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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