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5. 26. 09:55
반응형

눈
눈에 보이는 것들

조금 있으면, 조금 더 있으면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아마도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는 상황을 이야기하시며,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복음 전문을 읽으며 더 깊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조금 더 있으면 예수님을 다시 볼 수 있음을 이야기하시지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전해 들은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추측할 수 있지만, 당시 제자들에게는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에게는, '아버지께 가는' 여정을 떠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다시 볼 수 있을지 정말 의문 투성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다시 보는 것, 즉 예수님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시 만나다


 함께 있던 사람이 멀리 떠난 경우, 그를 다시 만나는 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 듯합니다. 떠났던 그 사람이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방법과, 내가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말씀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이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재회의 방법에는 이 두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보지 못하다


 예수님의 말씀 중 곱씹게 되는 한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더 이상"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분명 잠깐의 이별만을 이야기하는 표현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이상", 즉 앞으로 볼 수 없게 될 사람을 어떻게 다시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활 장면을 떠올려봅니다. 예수님의 무덤 옆에서 울던 여인들도, 배 위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도, 엠마오로 향하는 길을 걷던 이들도, 분명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죽음 이전의 모습 그대로 나타났었다면, 어찌 그들이 예수님을 못 알아보았겠습니까? 제자들은 분명 예전 자신이 "보아오던" 그 예수님을 "더 이상" 보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볼 수 있게 된 예수님


 그러나 제자들은 분명 시간이 지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방식이 예전과는 달라진 듯합니다. 기존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즉 "눈"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보고 있던 것이지요.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들을 보고, 예수님의 생김새와 표정, 그리고 행동을 보며,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지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시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예수님의 흔적들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제자들은 "눈"으로는 더 이상 예수님을 알아차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예수님을 알아차렸습니다. 눈앞에 마주한 대상이 기존에 눈으로 보던 예수님은 아니었지만, 마음으로 느껴지는 그 무언가는 분명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죽음을 이기신 기적을 넘어,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주신 커다란 축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시각이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 즉 그 대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법을 알려주신 커다란 가르침이기도 하지요.

 

마음으로 느끼다


 누군가를 눈으로 보아야만 알아차릴 수 있다면, 눈에 그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는 늘 근심과 걱정이 가득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보이지 않더라도 서로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근심 대신, 기쁨이 가득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수단을 잠시 내려놓게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라고 판단했던 그 근거를 잠시 내려놓게 하며, 틀에 가두어 두었던 예수님을 더 넓고 크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사실 성자이시며 말씀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형태로만 존재하던 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인지할 수 있도록, 잠시 동안 사람의 형태로 세상에 오셨지만, 원래의 예수님은 오감을 통해서만 알아차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예수님을 느끼는 것은, 진정한 예수님을 알아가는 필수적인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예수님, 그리고 하느님은 사라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를 떠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다만, 우리가 하느님을 느끼지 못할 때, 그분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 하느님은 늘 우리 곁에 계셨고, 또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볼 수 있는 법, 바로 예수님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법을 알게 된다면,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이 가득한 곳,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루카복음 17장 20절, 21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