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2. 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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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세상을 바라보는 눈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작품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말씀 구절을 통해 질문을 던지십니다. "무엇이 보이느냐?"라는 질문은, "너희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하냐?"라는 물음처럼 다가옵니다. 눈먼 이를 치유해주는 이야기에 담긴 또 다른 물음을, 복음 전문을 살펴보며 찾아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예수님의 질문

 "무엇이 보이느냐?"라는 질문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의사의 질문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치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 확인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예수님은 다른 기적처럼 한 번에 치유를 허락하시지 않았을까요?

각기 다른 치유 방식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의 치유를 행하십니다. 누군가가 더 뛰어나거나, 부족해서 그러한 차이를 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치유 방식이 그 사람에게 가장 알맞기에 차이를 두시는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즉각적인 치유를 허락하시고, 또 어떤 이에게는 치료를 위한 행동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 속 눈먼 이에게는 단계별로 치유를 진행합니다. 예수님이 행하는 치료는 일괄적이지 않습니다. 형식적인 처방과 같은 말만 반복하는 진료는 예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눈을 떠가는 단계

 복음 속 눈먼 이는 바로 보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가, 치유 과정을 통해 조금씩 보이게 됩니다. 그 후 또 다른 치유 과정을 통해 눈먼 이는 똑똑히 볼 수 있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변화

 빛을 쐬지 못하다가 한 번에 빛을 보게 되면, 눈에 큰 무리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도 신체에 무리를 주는 사례도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치유 과정은 환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합니다. 병 자체의 치유보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진짜 치료"를 행하십니다.

맞춤형 교육과정

 어려운 지식을 전해주는 과정에 이와 비슷합니다. 한 번에 방대한 지식을 몰아넣는 것은 배우는 이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배우는 사람의 흥미를 떨어뜨리고, 부담을 줍니다. 현명한 스승은 제자의 상황에 맞게, 공부 과정을 나누어서 전달합니다. 예수님이 마련하신 인생이라는 공부방은 맞춤형 교육과정으로 진행되는 듯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은, 치료자이자 선생님인 예수님이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안경을 벗으면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시력이 나쁠수록 대상이 무엇인지를 추측하기도 어려워집니다. 

나무처럼 보인다

 문득 눈먼 이의 대답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사람들이 나무처럼 보인다." 생각보다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실제로 삶에 지쳤을 때는, 사람과 나무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장기화되는 펜데믹 시대에는, 사람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매개체로만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없는 세상에서는 행복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보는 세상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어떠한지'는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지금 마주하는 삶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배경 중 하나가 아니라, 자신에게 허락된 선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은 더 특별해질 것입니다. 실제로 눈은 뜨고 있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던진 물음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알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그리고 뚜렷이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