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하느님의 일이 무엇일까? (신이 원망스러울 때)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2. 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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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지르는 사람
소리를 지르는 사람

사탄이라니?

 오늘의 말씀 구절은 상황은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수석 제자라 불리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살면서 듣는다면 가장 불쾌할 것 같은 말을 예수님에게 듣게 된 베드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은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신 건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추측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예수님의 질문

 복음 속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 물음에 제자들은 남들이 말하는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구체적인 질문으로 다시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사실 세상이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운전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운전자의 시야이지 동승자의 시야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또 다른 접근

 하느님(신)을 어떠한 존재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누구인지, 세상은 어떤 곳인지,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게 됩니다. 남들이 말하는 신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있고 경험한 하느님은 어떠한 존재인지를 물어보시는 듯합니다.

베드로의 대답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베드로는, "그리스도(구세주)"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살려주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사의 수술 과정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수술하는 과정을 상상해봅시다. 환자는 의사가 수술을 통해 자신을 살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맡깁니다. 하지만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아 환자가 자신의 배를 가르는 수술 과정을 모두 지켜보게 된다면, 어떠한 생각이 들까요? 이 사람이 나를 살리고 있구나, 지금 내가 치료를 받고 있구나, 이 치료를 통해 내가 살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까요? 환자는 "이러다가 죽겠구나, 당장 멈춰라, 차라리 죽여라!"라고 외치며 의사에게 욕이란 욕은 다 퍼부을 것입니다.

수술에 대한 브리핑

 수술을 시작하기 전, 의사는 환자에게 수술의 진행과정을 브리핑해줍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을 구해줄 자신의 희생 과정에 대해 브리핑해줍니다. 그 브리핑 과정에서 환자가 의사에게 "네가 뭔데 내 배를 가르냐, 배를 가르면 흉터가 생기니까 연고만 바르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환자는 의사를 '자신을 살리는 존재'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수술 과정을 말하기 전에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의사의 결정

 진짜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해진 최선의 방법을 시행합니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 수술이 유일한 치료 방법일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위해서는 환자에게 수혈될 누군가의 건강한 피가 필요합니다.

말하지 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시고, 다른 이 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본인의 겸손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이 다 끝나기 전에, 모두가 그 과정을 세세히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그 일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수술 과정을 브리핑하지만 수술실에 가족들을 들여보내지 않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사람의 일과 하느님의 일

 사람의 일은 순간과 찰나를 보고, 하느님의 일은 전체를 봅니다. 행복을 위한 사람의 일은 당장의 나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지만, 행복을 위한 하느님의 일은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과정에서 순간만 본다면, 진통제가 치료약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진통제가 아닌 수술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수술 과정의 찰나를 보면 사람을 죽이는 과정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를 본다면 그 방법이 환자를 진짜 살리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사람의 일은 부정적인 것인가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나무랍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람의 일은 부정적인 것일까요? 사람이 사람의 일 말고, 무엇을 더 생각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복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은 사람의 일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을 나무라고 있습니다. 사람의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일만 생각하며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일을 생각하는 법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은 하느님뿐이기에, 사람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어쩌면 하느님의 일이라며 행하는 거창한 선행들이 사람의 일로 그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듯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믿는 것뿐입니다. "하느님이 있구나"라는 믿음을 넘어, "하느님은 궁극적으로 나를 살리고자 하시는구나"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의 치료 방법입니다. 그 순간에는 최악의 공격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베드로가 앞으로 살아가며 마주할 모든 것들을 알고 있는 예수님이 선택한 최선의 치료법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존재 자체를 꾸짖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좀먹고 있는 그 무언가를 내쫓고자 하신 말씀입니다.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

 아기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아기는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 어머니가 무섭습니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는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기는 어머니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기를 괴롭히기 위해 고함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기가 가지고 있는 위험한 물건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 고함을 지른 것이었습니다.

삶이 힘들고 괴로울 때

 삶에서 하느님이 원망스러울 만큼 힘들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하느님은 나의 무엇을 치료해주고 계시는지를 생각해봅니다. 당장은 이해되지 않고, 비명만 지르고 싶지만 결국은 나를 살리실 하느님을 믿어봅니다. 아무리 긴 삶이라도 모든 것은 순간이고 찰나일 것입니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에게 살면서 있었던 불행과 고통을 맡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