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우리의 육신은 죽일지라도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0. 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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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은 죽여도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자신의 생명을 해하거나, 안위를 위협하는 대상을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우리의 육신은 해하여도, 영혼까지 훼손시킬 수는 없음을 알려주십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이 말씀에 대해 조금 더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바리사이들의 누룩


 예수님의 기적과 가르침이 널리 퍼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찾아옵니다. 사람들이 밟힐 만큼 군중의 수가 늘어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씀 하나를 전하십니다. "바리사이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이러한 말씀을 하셨던 것일까요?

 

 수많은 인파가 우리 앞에 모여서, 우리의 말을 귀 기울이고 있는 상황을 상상해봅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찬 군중이, 우리의 말을 듣기 위해서 서로를 밀치면서까지 다가오는 그러한 상황을 말이지요. 우선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우리의 자존감은 하늘로 치솟을 것입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나의 말 한마디를 기다리면서 애타게 바라보고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마치 신이 된듯한 느낌마저 들 테지요.

 

우리의 진짜 모습


 예수님은 그러한 상황에서 흐트러질 제자들과 우리의 마음을 잘 아셨던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귀를 기울인다는 이유로, 때로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그럴싸한 모습을 보이며 군중에게 더 큰 관심과 인정을 바라는 우리의 욕심을 아셨던 것이지요.

 

 사실 이러한 흐트러짐은, 우리의 존재에 변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생긴 흐트러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분과 감정에 변화가 있을 뿐, 정작 우리의 진짜 모습에는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모습에 가까운 상태는, 아무도 우리를 보지 않고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때 나타납니다. 어두운 곳에서 한 말을 모든 사람이 밝은 데서 들을 것이라는 말씀은, 결국에는 우리의 진짜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괴리감, 그리고 존재감


 어쩌면 세상에 대한, 혹은 자신에 대한 '괴리감'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환상을 만들어간다면 괴리감은 더욱 커져갑니다. "위선"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잊고, 자신의 상태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게 만들기에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예수님은 타인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우리의 존재 자체를 더 올려주거나 낮출 수 없음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은 엄청난 수의 군중의 환호를 받아보기도 하였고, 군중들에게 비난과 저주를 받아보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육신은 그 군중들에 의하여 처참하게 살해되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평정심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무언가가 우리의 육신에는 영향은 주지만, 우리의 영혼과 존재 자체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환호와 칭찬이 우리의 존재 자체를 높일 수 없으며, 그들의 공격과 비난이 우리의 존재 자체를 낮출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타인 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게 되지요.

 

진정한 자유


 예수님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세상의 것들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타인의 판단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그러했기에 예수님은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으며, 늘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행복은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이며, 불행은 자신의 모습대로 살지 못하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스스로의 모습은 하느님께서 태초에 창조해주신 우리의 모습일 것이며, 그 모습을 진정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느님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때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하느님뿐임을 알려주십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느님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공포로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집중하고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는, 진정으로 우리의 존재에 대한 권한이 있는 하느님의 목소리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존재의 변화


 복음에는 하느님이 자그마한 참새의 존재마저 모두 기억하신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기억하실 만큼, 세밀한 부분마저 기억하고 계신다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잘잘못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우리를 감시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머리카락은 새로 자라기도 하고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변화는 과정을 모두 아시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가 변화하는 과정마저 하느님은 모두 다 느끼고 계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점점 하느님을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의 몸이 계속해서 변화하듯, 우리의 존재 역시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우리의 존재 변화는, 우리의 존재를 관할하는 하느님의 이끄심으로만 가능하며, 하느님과 우리 자신만이 개입할 수 있는 '고유 영역'입니다. 세상의 어떠한 것들이 우리를 치켜세우거나 깎아내리더라도, 그들은 이 고유 영역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만들어내지 않았기에, 그들은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자신의 존재 이유를 타인, 혹은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는 그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하느님을 통해서 생겨나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변화될 수 있음을 기억한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그 모든 일들이 우리의 마음과 존재를 휘두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얻은 자유는 기쁨과 행복일 것이며, 우리의 구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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