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정해진 때는 오고야 만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0. 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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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바다를 향하는 길

그것은 오고야 만다


 오늘 독서에서는 이러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기다림에 대해, 그리고 마침내 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독서 전문을 읽으며, 오고야 마는 그 무엇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듣지 않으시는데


 독서에 등장하는 하바쿡 예언자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듯한 하느님께 울부짖으며 한탄합니다. 살려달라고 해도 하느님이 구해주시지 않는 듯한 상황과, 불의를 보고 외쳐봐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은, 하느님에 대한 불만을 갖게 합니다. 하느님은 정말로 사람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듣지 않으셨던 것일까요?

 

 하느님께서는 하바쿡 예언자의 말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바쿡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상황들에, 즉각적으로 대처하지 않으셨을 뿐이며, 그러한 선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하바쿡 예언자에게 그가 보고 있는 것들을 모두 기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장 그 상황들이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정해진 때를 위해 그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야 함을 이야기하십니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시며, 그때는 분명 오고야 만다고 말씀과 함께, 하느님은 '기다림'을 권고하십니다.

 

 사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상대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의 말을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의 바탕에는, 자신의 생각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판단에서 생겨납니다. 어쩌면 사람은, 신에게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우리의 한탄과 울부짖음을 굽어보시고, 우리의 괴로움을 덜어주시는 방법을 전해주십니다.

 

그대로 두는 이유


  많은 사람들은 부조리하고 부당한 세상 속의 상황들을 바라보며, '신은 없다'라고 말하고는 합니다.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러한 일들을 허용할 수 있으며,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일들을 외면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지요. 독서에서 '환시'라고 표현한 상황들은, 어쩌면 이러한 생각을 지닌 우리가 겪어야 할 필수적인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흔히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닐지라도, 꿈속에서 벌어진 상황의 끝이 좋지 않았을 때, 현실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까를 경계하며 주의합니다. 사람들은 직접적인 경험으로 느낀 무언가를 강렬하게 받아들입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보아야 안다"라는 말은 무언가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함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경험이 무지함을 깨부수고 진실을 알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괴로움에 빠지지 않도록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는 두 길 중, 어떠한 길이 자신을 괴로움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길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 길을 직접 걸어서 괴로움과 죽음을 하나하나 찍어먹어 보기에는, 인생은 짧고 사람들의 정신은 나약합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진정한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일화들 중에는, 하느님의 이끄심을 무시한 채, 스스로 잘못된 길을 선택하고 괴로워했던 사례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 기록들은 하느님의 이끄심을 무시한 채 죽음의 길을 걸어갔을 때, 그 끝에는 생명이 아닌 괴로움과 죽음만이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지요.

 

정해진 때를 기다리다


  예언자가 보고 겪은 것들이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물리적인 날짜와 시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언자의 그 기록들은, 우리가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또는 혼란을 겪고 있을 때에, 무엇이 올바른 길이며 살 수 있는 길인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자신이 걷는 길의 끝에 무엇이 놓여있는지를 알아차리는 때가 바로 정해진 때이며, 마침내 오고야 마는 그러한 때일 테지요.

 

 만약 부당해 보이고 부조리해 보이는 선택의 끝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한 번도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길이 왜 잘못된 것이고, 죽음을 향한 길인지를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부모는 유통기한이 지나 상하게 된 음식을 먹겠다는 아이를 매번 말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상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단순히 부모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기에 그러할 뿐이겠지요. 만약 부모의 감시와 대응이 없어진다면, 아이가 상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아이 스스로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서 고생을 해본다거나, 누군가가 상한 음식을 먹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아이는 누군가가 그 음식을 권한다고 하여도 절대 먹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의 개입이 없어도, 부모의 감시와 처벌이 없어도, 그렇게 아이는 스스로 자신이 괴로워지지 않을 일을 선택하게 됩니다.

 

정해진 생명의 길


  하느님은 악을 통해서도 선을 창조해내십니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기록하여, 그것을 반면교사 삼을 수 있도록 마련해주십니다. 이러한 기록들은 후대의 누군가를 생명의 길로 걸어갈 수 있게 만들고, 단순히 계명과 규율에 의해 생명을 향하는 기계적인 존재가 아닌, 스스로 생명을 향해 찾아나갈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로 사람들을 탈바꿈시켜 줍니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도, 당장은 이상이 없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하느님은 뻔뻔스러운 자들이라고 표현하십니다. 하느님은 그들의 정신은 올바르지 않은 것이며, 뻔뻔스러운 자들의 모습에 동요되지 않고, 생명의 길을 찾아 꾸준히 걸어가는 의인들의 성실함이야 말로 올바른 길임을 강조하십니다. 잘못된 길을 걷는 이에게는 죽음이 정해져 있고, 올바른 길을 걷는 이에게는 생명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러한 정해짐은 변하지 않기에, 분명 '때'가 되었을 때 각자의 길 끝에 있는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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