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 (하늘의 시민)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3. 1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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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는 두 사람
약속하는 두 사람

하늘의 시민

 오늘 말씀 구절 속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왠지, 하늘의 시민이라는 말이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어색함과 함께,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늘의 시민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듭니다. 과연 하늘의 시민은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늘의 시민이 될 수 있는지를, 독서 전문을 살펴보며 생각해봅니다.

 

제2독서 전문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바오로 사도의 외침

 독서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을 담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강하게 외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박해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체험하게 되는 기적을 마주하고,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를 깨닫게 된 인물이지요. 그래서 그의 외침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것만 생각하는 것

 바오로 사도는 이 세상의 것만 생각하는 태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에, 이 세상의 것을 외면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길은, 이 세상의 것을 외면하고 무시해야 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이 세상의 것을 바라보는 것 자체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단지 이 세상의 것만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놓치는 상태를 나무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원수

 이 세상의 것만을 생각하는 삶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표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하는 구원과 사랑,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만약 그러한 희생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간다면, 십자가를 외면하는 것이 되겠지요.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단 한 번만 할 수 있는 약속을 너무나도 쉽게 무시해버린다면, 가히 원수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수치를 영광으로 삼는 자

 수치를 영광으로 삼는다는 말이 머릿속에 머무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행위는 수치스러운 것일 겁니다. 부모님의 뒷바라지를 당연히 여기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떠올려봅니다. 부모님께 공부를 위해, 성장을 위해, 건강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며 지원을 받아놓고, 사실상 자신의 유흥에 그 돈을 사용하는 사람을 상상해봅시다. 만약 그 사람이 이러한 불효를 수치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들 앞에서 자랑처럼 이야기한다면 어떠한 기분이 들까요? 우리도 이와 같은 행동을 예수님께 똑같이 반복할 때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는 세상에서 우리가 잘 먹고 잘 살며, 더 큰 쾌락을 추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물론 세상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끌어주시기 위함이지만, 그 여정의 종착점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서만 한정되어있다면, 예수님은 그러한 방식의 약속을 이행하실 필요가 없었겠지요.

 

우리가 머무는 곳

 숙소를 예약하여 일정 시간만 그 공간에서 보내는 상황을 상상해봅시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대여한 숙소는 본인이 계속해서 머물 공간이 아니기에, 더욱 막무가내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정된 시간에 만족감을 올리는 것에만 집착할 때 그러하겠지요. 우리의 삶을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삶은 쉽게 망가져버릴 것입니다. "하늘의 시민"이라는 말 안에는, 우리의 삶이 한정되어 있지 않음을, 그리고 우리가 머무는 곳이 아닌, 계속해서 살아가는 곳이 있음을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늘의 시민임을 기억하라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러한 점을 상기시켜줍니다. 우리는 잠시 켜졌다가 꺼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잠시 살아가지만, 결국은 하느님 곁에서 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하늘의 시민'이 될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우리 스스로의 존재를 깎아내려서는 안 됩니다. '주님 안에 굳건히 서있으라'는 바오로 사도의 당부는,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진짜 존재를 기억하라는 말과 이어집니다.

 

구세주를 고대한다

 바오로 사도는 구세주로 오실 예수님을 고대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약 전지전능하고 선한 신이 직접 한 약속이라면, 그 약속은 당연히 지켜지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신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면서까지 약속을 했다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내용을 기억하도록 도와줍니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그 약속을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립니다. 잠시 동안 비천한 우리의 몸을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시켜주시겠다는 그 약속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지켜가는 약속

 약속한 내용은 한쪽에서만 일방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 친구가 만나기 위해 장소를 정하고 약속했다고 가정해봅시다. 한 친구는 약속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도 해두고, 알람도 맞추어 놓았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조금 일찍 출발하였기에, 약속 장소에서 시간에 맞추어 친구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친구는 약속 시간까지만 즐기겠다는 게임에 빠져 약속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두 친구는 만날 수 없게 되었지요. 이처럼 만남을 위한 약속은 한쪽의 노력으로만 지켜질 수는 없습니다.

 

잊지 말아야 한다

 만남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해주신 그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도록, 매번 그 약속을 상기시키고 기억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남의 약속을 늘 기억하고, 만남을 위해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늘의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약속 장소에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잊어만 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너희는 약속 장소에 늦지 않도록, 이를 기억하고 행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