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행복의 비법을 알리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9. 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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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꽃이 피어있는 길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이 구절은 각자의 몫이 있다는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우리의 몫은 무엇인지,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는 것은 무엇인지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여정을 이어나가던 예수님의 일행에게,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이 어디를 가든지 따라가겠다는 엄청난 포부를 드러내지요. 그 말에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라고 말씀하시며, 그 여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의 여정을 따라가야겠다고 결심할 때가 있습니다. 결심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좋아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내려진 결심이었을 테지요.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풀려진 기대와 환상에 사로잡히면, 그 여정의 참된 모습을 가려버리기도 합니다.

올바른 선택


  예수님은 무언가를 기대하고 예수님의 여정에 함께하고자 하는 그 사람에게 진실을 알려주십니다. 이 여정에서는 남들에게 대우받기보다 외면받는 일들이 더 많을 것이며, 한 곳에 안락하게 정착하기보다, 계속해서 이동하며 나아가야 하는 삶에 가까울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만약 그 사람이 예수님의 여정을 선택한 이유가 "편안함"이었다면, 그 사람은 잘못된 여정을 시작하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좋아 보이는 측면만 부각하며 결정을 내린다면, 우리는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과하게 쏟아부어진 자신의 에너지는 쉽게 회복되지 않기에, 여정을 이어나갈 힘조차 부족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선택마저 부인하게 되고, 자신이 바라던 것을 얻지 못하였다는 불행에 휩싸이게 되어버리지요.

예수님의 부르심



이번에는 예수님이 누군가를 부르는 사례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누군가에게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여정을 미루고, 다른 것을 먼저 선택을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몫이 아닌 것들을 자신의 몫이라고 착각하며, 그것들을 행복을 향한 자신의 여정보다 우선시 여길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두 사례 모두,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향한 움직임보다, 자신이 해야 할 것만 같은 일들을 향한 움직임을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는 일과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자신이 해야 될 것만 같은 일에 매몰되기 전에, 자신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내면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주어야, 진정한 행복을 향한 여정이 시작될 수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참된 행복을 향한 여정


  오늘 복음에 등장한 여러 사례들은 "참된 행복을 향한 여정"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기대와 환상에 빠져, 무작정 저 길을 따라가다 보면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어디로 가든지, 스승님을 따르겠다고 외치던 사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참된 행복을 위해서는, 좋아 보이는 것들 외의 측면도 바라보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우리는 좋아 보이는 측면만 부각할 때가 많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결혼생활의 좋아 보이는 점만 꿈꾸기도 하고, 종교단체에서는 거룩함만 기대하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지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좋은 말만 주고받고, 웃는 사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기도 하며, 삶에서 늘 즐겁고 편안한 생활만 이어지기를 꿈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치우쳐진 시각을 지니고 선택을 하게 되면, 언젠가는 불행에 빠지게 되지요.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우리가 선택하는 여정의 어려움들을 "알고"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결혼 생활에서는 다툼과 마찰이 있으며, 종교단체에서도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불편한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아무리 좋았던 인간관계에서도 부정적인 감정들이 오고 갈 수 있으며, 삶에서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음을 말이지요.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예수님은 행복을 향한 여정은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시작될 수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나를 따르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단순히 예수님의 일행이 되어, 함께 걸어 다니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는 현대에서는 그러한 "따름"이 불가능하니 말이지요. 예수님의 부르심은 때때로, 우리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부르심이며, 단순한 충동과는 구별되는, 행복을 갈망하는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이지요.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그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해야 할 것만 같은 것에 사로잡히기 전에, 자신이 진정으로 가고 싶어 하는 길이 어디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모르는 사람에게 "행복"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 즉 "자신의 참된 행복을 향한 여정"은, 그 어떠한 일들보다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이는 단순히 이기적인 선택을 하면서,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귀 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의 목소리도 들어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는 외면하는 사람이, 어찌 타인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자신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타인의 요구와 입장만을 먼저 들어준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행복을 향한 여정"을 시작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너무나도 거룩하고 성스러워서 우리가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그러한 여정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참된 행복과 생명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를 그 여정으로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여러 갈림길에서, 우리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예수님의 목소리, 즉 우리의 진정하고도 참된 바람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타인을 위해 해야 될 것 같은 일들을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정말로 가고 싶은 길을 먼저 선택해봅시다. 하느님의 나라를 알리는 것은 하느님의 나라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일을 선택하고, 행복을 위한 여정을 이어나가 본 사람만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 행복을 알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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